[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영국에서 도축을 앞둔 돼지가 출산을 위해 농장을 탈출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새끼를 지키기 위한 돼지의 모성(母性)에 영국인들은 '숲 속 돼지가족 구조' 서명운동과 기부 캠페인 등을 벌이며 이들을 응원했다.
영국 국영 BBC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동부 노팅엄셔 오러턴 인근 숲에서 어미 돼지 한 마리가 새끼들에 젖을 먹이는 장면이 포착됐다.
반려견과 산책에 나선 인근 주민 애나 애스턴(49)은 숲 속에서 암퇘지 한 마리가 나무 옆에 누워 10마리 새끼들에 수유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애스턴은 "초반 오소리나 멧돼지일 거라 생각했지만, 분명 일반 돼지처럼 보였다"며 "숲에서 처음 본 광경이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애스턴은 처음 돼지들을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어미 돼지와 새끼들이 숲 속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에 애스톤은 브린슬리 동물구조단체에 연락했고, 수소문 끝에 돼지들이 인근 농장에서 탈출한 것을 확인했다.
다만 특정 농장 소유의 돼지를 함부로 보호하는 것은 절도죄에 해당돼 동물단체는 이들 돼지 보호를 위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농장주는 숲 속 돼지 구조를 위한 서명운동까지 확산하자 돼지 가족을 브린슬리 측에 맡겼다.
이 단체는 어미 돼지에 '마틸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또 마틸다와 10마리 아기돼지에겐 1998년 일어난 돼지 도살장 탈출 사건 '탬워스 투(Tamworth Two)'를 따 '오러턴 일레븐(Ollerton 11)'라는 별명을 붙였다.
'탬워스 투'는 영국 탬워스의 한 도살장에서 죽음을 앞둔 돼지 2마리가 탈출해 1주일간 도망다니다가 결국 잡혔지만 도살장 측이 이를 살려준 사건을 말한다.
애스턴은 "마틸다가 어디서 왔든, 새끼들과 함께 보호 받고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다"며 "마틸다가 이제 자유를 찾았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마틸다가 언제 농장을 탈출했는지는 농장주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발견 당시 새끼 돼지는 생후 3주 가량 된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적으로 돼지의 수명은 15~20년 가량이지만 식용 돼지는 생후 6개월 정도에 도축된다.
브린슬리 동물구조단체 설립자인 존 브레스포드는 마틸다의 행동에 대해 "모성 본능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난 여길 나가서 새끼를 낳고 싶어' 같은 본능으로 양돈장을 탈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마틸다와 아기 돼지들은 현재 영국 중부 미드랜드 지역의 동물 보호 구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향후 새끼돼지들은 마틸다에 의존하지 않을 때까지 함께 지낸 뒤 새 주인을 찾게 될 예정이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영국인들은 마틸다와 아기돼지 보호를 위한 서명과 기부운동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마틸다가 마침내 자유를 쟁취했네" "새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마틸다가 대단하다" "마틸다와 새끼가 모두 보호돼 다행이다" 등의 응원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