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커피전문점에서 유일하게 판매하는 과일, 편의점 진열대에도 꾸준히 올려지는 과일. 바로 바나나이다.
한국인이 유난히 좋아하는 이 바나나에는 눈에 띄는 트렌드가 없었다. 그저 ‘노란 바나나’ 만으로도 만족했던 시절이 길었다. 이는 가장 흔한 캐번디시(cavendish) 품종으로, 지난 1960년대 곰팡이 균이 일으키는 파나마병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그로스미셸 품종의 대체 바나나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바나나에도 개성을 담은 이름들이 붙기 시작했다. ‘샤인머스캣’ 포도처럼 과일도 품종을 골라먹는 트렌드가 일면서 바나나 유통업체들은 새로운 이름 짓기에 바쁜 모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나타난 ‘유기농’과 ‘대용량’ 추세도 바나나 트렌드에 스며들었다.
‘더 달콤함을 원해’ 당도 높은 바나나
스트레스를 높인 코로나19 사태의 영향 때문일까. 지난해 초콜릿 매출이 껑충 뛰어오른 것처럼 과일에서도 당도가 높은 품종이 인기를 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을 섭취하려는 의지와 함께 스트레스를 달래줄 달콤함의 욕구가 결합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당도높은’ 파인애플이나 딸기 등 과일 포장지에는 당도 표시를 강조하는 문구가 늘고 있다.
바나나는 달콤한 맛을 가졌으나 그 중에서도 당도가 더 높게 개발된 품종들이 있다. 바나나 전문 글로벌 청과 기업 스미후루의 경우, 당도가 24 브릭스(brix, 당도를 측정하는 단위)이상인 ‘로즈 바나나’의 올해 (1~4월)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87% 증가했다. 가격은 일반 바나나에 비해 2.5배 정도 비싸지만 소비자 반응은 꾸준한 상승세이다.
바나나도 ‘대용량 · 유기농’
대용량 트렌드도 볼 수 있다. 집에서 요리하는 시간이 늘어난 반면 장을 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대용량으로 식품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것이다.
편의점에서는 바나나가 소용량 위주로 판매됐지만 이러한 추세에 따라 최근에는 대용량 바나나도 판매되고 있다. 스미후루 관계자는 “집에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대용량 과일의 구매 성향이 강해지면서 바나나 역시 편의점에서 대용량 상품(4입 이상)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확산후 높아진 건강·환경에 대한 관심에 따라 바나나 역시 유기농 바나나의 매출이 상승하는 추세다. 친환경 식품 전문 유통기업 올가홀푸드의 경우 올해 5월 유기농 바나나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5% 증가했으며, 최근 3개월간 전년대비 두자리 수 매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올가홀푸드 관계자는 “공정무역 바나나의 3월 런칭과 벌크 진열(플라스틱 포장상품 대신 과일과 채소를 그대로 쌓아두어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진열 방식) 확대 후 유기농 바나나의 판매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비싸도 ‘레드 바나나’, 유럽은 요리 활용 ‘그린 바나나’
지역별로 바나나 트렌드도 다르다. 미국에서는 특히 ‘레드 바나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바나나의 정체성과 같은 ‘노란색’을 과감하게 버리고, 딸기처럼 빨간색을 입었다. 일반 바나나보다 2배 정도 비싸지만 레드 바나나는 미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프리미엄급 과일이다. 맛 또한 라즈베리 맛이 감돈다.
‘그린 바나나’도 있다. 익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단 맛이 덜하지만 인기 비결은 ‘저항성 전분’이다. 이는 대장까지 내려가 장 건강과 비만 예방 등 식이섬유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그린 바나나에는 저항성 전분이 20% 다량 들어있어 소화기 건강에 관심이 많은 유럽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의 리버풀 존무어스대 로드니 빌튼 교수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를 통해 “그린 바나나 속 저항성 전분은 천천히 체내로 흡수돼 오랜 기간 에너지를 제공하며, 일반 바나나처럼 혈당을 높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주로 ‘그린 바나나 가루’(Green banana flour)를 이용해 요리에 활용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개인의 취향 존중이 글로벌 푸드 트렌드를 이끌면서 바나나 역시 취향에 맞는 다양한 품종들이 소비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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