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TV도 없는데 KBS 수신료 꼬박 꼬박 빠져나가 따졌더니…”
KBS가 수신료 인상(월 2500원→3840원)을 추진하면서 TV를 보지 않는 세대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집에 TV가 없는데도 계속 수신료를 내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TV 없는 세대의 수신료 부담 유발 요인 중 대표적 사례가 주방 모니터다. 방송 수신 기능이 있어 법적으로 수신료 부담 근거가 된다. 심지어 한번도 방송을 본 적도 없는 주방모니터 때문에 매달 수신료를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주방 모니터는 아파트 중심으로 기본 설치된 경우가 많다. 가정 내 인터폰, 현관문 앞 화면 표시, 엘리베이터 컨트롤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지상파 등 방송 수신도 하고 있다. TV가 없어도 수신료 부담 법적 근거가 되는 이유다.
방송법 제64조(텔레비전수상기의 등록과 수신료 납부)는 “텔레비전방송을 수신하기 위하여 텔레비전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사에 그 수상기를 등록하고 텔레비전방송수신료를 납부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KBS 수신료 해지 상담을 하면 “가정에서 TV를 안 보거나 TV가 없는 것은 관계 없다. 수신료는 방송 수신기능을 갖춘 기기가 있다면 반드시 납부해야 하는 공적부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KBS 수신료를 내지 않기 위해 일부 시청자들은 주방 모니터를 철거했다는 경험담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전하고 있다. 이들은 “출장비 2만원에 철거비용까지 추가로 연간 수신료(3만원)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 “월 2500원 생돈 안 내려고 기꺼이 공구 비용 부담해서 셀프로 철거했다” 등이라고 밝혔다.
주방 모니터를 철거했다면 아파트 관리소에 신고해 말소 처리를 확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매달 아파트 관리비에 청구되는 수신료를 배제할 수 있다고 KBS 측은 설명했다.
이와 함께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수신료 해지법이 공유되고 있다.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수신료를 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관리실에서 ‘TV수신료 면제 신청 안내’를 공지하며 문의에 대응하고 있다.
현재 TV가 있는 가구라면 KBS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내고 있다. 한국전력(한전)이 각 가구 전기료에 2500원을 강제로 부과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징수를 대리해 주는 조건으로 약 6.6%의 위탁수수료를 받아간다.
KBS 수신료를 환불받으려면 TV가 없어 보지 못한다고 개인이 알려야 한다. KBS 수신료 징수를 대행하는 한전에 전화해 TV 말소 사실을 통보하면 된다. 아파트 세대의 경우 관리사무소가 TV 말소 사실을 확인 후 한전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TV가 있지만 KBS를 보지 않는 것 자체는 환불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수신료 해지법 공유가 확산되는 이유는 TV자체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TV를 필수 매체라고 인식하는 비율(방통위 ‘2020년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이 2011년 60%에서 2020년 29.5%로 최근 10년 새 반토막 났다.
여기에 수신료를 환불 받은 가구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KBS는 2020년 한 해 동안에만 3만6273가구에 수신료를 돌려줬다.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부정 여론도 긍정 여론을 압도한다.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서 KBS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은 7.1%에 그쳤다. 오히려 수신료 폐지 의견이 44.2%로 가장 많았다. KBS의 공영방송 역할 수행 질문에도 긍정 의견은 27%에 그친 반면, 부정 의견이 69%로 2배 이상이었다.
한편 최근 KBS사보에 따르면 양승동 KBS 사장은 “수신료의 가치를 더욱 높여 간다면 KBS는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수신료 현실화(인상)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 사장은 “고품질 다큐멘터리, 명품 대하사극들을 풀HD 고화질 영상으로 무료 서비스하는 KBS명품관 등을 이날부터 개시한다”며 “그동안 방송됐던 좋은 프로그램들이 지상파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에서 누구나 쉽게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한다면 수신료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