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인도 주행 안 하려고 일부러 세웠더니, 옆에 소화전이 있었을 줄이야..ㅠㅠ 각박하네요.”
최근 배달 시장의 급격한 팽창으로 이륜차 운전자들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선정한 수천명의 공익제보단이 규정 위반을 단속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위반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사냥 명소’ 리스트가 공유될 정도다. 배달업자들은 본인의 규정 위반을 반성하면서도, 상시 감시의 대상이 된 상황에 불편감을 드러내고 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연초 모집공고 이후 3000명으로 조직된 ‘교통안전 공익제보단’이 지난달부터 활동에 돌입했다. 공익제보단은 배달수요가 증가하면서 늘어난 이륜차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새로 도입된 제도다. 첫해에는 2300명의 제보단이 활동했는데, 올해는 인원을 더 늘렸다. 신호 위반, 인도 통행, 헬멧 미착용 등 교통법규 위반사항이 제보 대상인데, 포상금 등 인센티브도 제공된다. 제보가 경찰 처분 등으로 이어진 경우 한 건당 최대 1만4000원, 월 최대 28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당장 제보단의 표적이 된 배달업계 이륜차 라이더들은 각박함을 호소한다. 배달업자들이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회원은 도로 소화전 옆에 이륜차를 잠시 세워뒀다가 제보단으로 추정되는 이의 제보로 과태료를 물게 됐다며 사진을 공유했다.
글쓴이는 “OO역 로데오 밖에 주차해놓고 한참 걸어 들어가서 음식을 픽업해 왔더니 주차위반으로 신고가 접수됐다”며 “사진상으로 위반이 명백하긴 한데, 바쁠 때 근처에 소방시설이 있는지 언제 일일이 확인하며 주차하느냐”고 토로했다. 도로교통법 32조6호에 따르면 소방용수시설 또는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된 곳으로부터 5m 이내인 곳은 주정차가 금지돼 있다.
동업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는 장애인 픽토그램이나 빨간 보도블럭 근처에는 절대 주차하지 말라며 조언을 했다. 다소 억울하더라도 법은 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태료나 벌점을 부과받았던 본인의 사례를 공유하며 각박함에 동감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불법 주정차의 경우 공익제보단 포상 내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배달업 종사자들이 그저 ‘공공의 적’이 된 듯하다”며 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실제, 제보단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나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적발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컨대, 특정 지역 A사거리에서 B가게로 진입하려는 이륜차는 시간 단축을 위해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를 포착할 수 있는 카페의 위치가 공유된다.
실제 눈으로 위반 현장을 본 뒤에 번호판을 찍으면 시간이 촉박하니, 일단 사진부터 찍어놓고 이후 위반을 하면 활용하라는 조언도 있다. 지난해 활동했다는 한 제보단은 적발 과정을 동영상 콘텐츠로 제작해 유튜브에 게재하고 있는데, 제보에 유용한 스마트폰 앱을 추천하기도 했다.
제보단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배달업 종사자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기존에는 ‘라이더끼리는 신고하지 말자’는 등 동업자를 감싸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간 얼마나 심했으면 제보단을 3000명이나 운영하겠나’는 등 자성의 목소리도 힘을 받고 있다. 직접 제보단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라이더도 등장했다. 한 배달업 종사자는 제보단이 늘어난 것에 대해 “자업자득이다. 너무 심하게들 탔다”며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