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주년 왕정홍 방위사업청장
부서장에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 맡겨
조직 대폭손질 복잡한 전결사항 줄여
방산기업 애로 직접청취 ‘다파고’ 시행
해외서 성능 시현땐 정부가 비용 부담
이달 취임 2년을 맞는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은 4일 헤럴드경제와의 취임 2주년 인터뷰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취임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다”며 “재임 중 방위산업 비리 근절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한편으로는 방산비리 논란을 의식한 소극적·비효율적 업무 구조를 개선하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세간에서 아직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방산비리 근절을 최우선시하면서도 동시에 방산비리 논란 때문에 업무 효율성이 저해되는 것을 막아 방산 수출 활성화 등을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 군사력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2020년 국가별 군사력 순위에서 미국·러시아·중국·인도·일본에 이어 세계 6위에 올랐다. 북한은 25위였다. 방산비리 근절과 함께 사업이 효율적으로만 추진된다면 우리 국방력이 더 개선될 거라는 국민적 기대감이 큰 상태다.
왕 청장은 먼저 각 사업별 사업부장이 사업 시작부터 종결까지 책임을 전담하도록 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다. 사업 진행 중 이견이 생길 수 있는 사업팀과 계약팀을 사업 시작부터 계약 완료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하도록 한 것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사업을 사업부서가 전결권을 행사해 방사청장이 보고도 받을 필요가 없게 되는 기존 업무 절차에는 과감히 손을 댔다. 방사청장 결제를 받지 않고 사업부서별 ‘전결’ 처리로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담당자가 일이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책임 소재를 피하고자 규정을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적용하거나 결제 시한을 질질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왕 청장은 “취임 초기에 8천억원 규모의 사업이 계약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결제를 받으러 안 오길래 ‘무슨 일이냐’ 물어봤더니 전결권을 행사했다고 하더라”면서 “최고 책임자 결제를 받지 않는 전결 처리 방식으로는 담당자들이 책임 소재를 피하려다가 사업이 불필요하게 지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청장에게 최종 결제를 받으면 그런 문제는 해소되지 않겠나”면서 “그 이후로 대부분의 사업은 청장 결제를 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왕 청장은 재임 중 2번의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취임 3개월째인 2018년 11월 27일 1차 조직 개편에서 국제협력관실·국방기술보호국·방위사업정책국 내 조직을 신설하거나 재편했고, 취임 1주년 즈음이던 지난해 9월 17일에는 사업관리본부와 계약관리본부를 통합시키는 대규모 2차 조직 개편에 나섰다. 이 조직 개편에 따라 기존 사업관리본부(6부 3단 57팀)와 계약관리본부(4부 1단 24팀) 중심의 2개 본부 체제는 기반전력사업본부(7부 39팀)와 미래전력사업본부(5부 2단 40팀)로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미래 첨단 국방기술 개발을 위해 미래도전기술개발제도를 지난해 2월, 빠르게 발전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국방 분야에 신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신속시범획득제도를 지난해 12월 각각 신설했다. 미래도전기술개발사업이란 무기체계 소요가 결정되지 않거나 소요가 예정되지 않은 무기체계에 대한 적용을 목적으로 하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신속시범획득사업은 기술발전 속도가 빠른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군 당국이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우선 구매한 뒤 시범 운용을 거쳐 신속히 도입하는 사업이다.
군 당국은 올해 처음 시행된 이 제도에 따라 지난달 25일 해안경계용 수직이착륙 드론, 감시·정찰용 수직이착륙 드론, 원거리 정찰용 소형 무인기, 휴대용 안티드론건(Anti-drone Gun) 등 4개 드론 제품 납품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현 국방획득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경직성’에 있다는 왕 청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는 “현행 국방획득제도는 사업 유형이나 규모, 획득의 시급성에 관계 없이 동일한 절차를 적용한다”며 “이런 방식 때문에 현재 전력화가 이뤄지는 무기는 대부분 5~10년 전 추진한 사업이고, 지금 추진하는 사업은 5~10년 후 전력화된다. 5~6년 걸려 무기를 도입하는 방식은 기술이 급변하는 오늘날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청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속시범획득사업 등 획득제도를 다변화하고, 앞으로는 기존 무기 획득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사업 관리자가 비용, 성능, 일정을 고려해 유연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청장 권한으로는 하기 어려운 방산 수출 증진 및 국방과학기술 발전 등을 위해 방위산업 발전법(2021년 2월 시행예정)과 국방과학기술혁신 촉진법(2021년 4월 시행예정) 제정에도 힘을 기울였다.
왕 청장이 재임 중 이룬 성과 중 스스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은 취임 후 시작한 방산기업 현장 방문 프로그램 ‘다파고’(DAPA-GO)다. ‘다파’(DAPA:Defense Acquisition Program Administration)는 방사청의 영문 이니셜 줄임말이고, ‘고’(GO)는 ‘간다’는 의미로, 방사청장이 직접 방산기업 현장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한다는 취지다.
취임 3개월 이후 매주 최소 1곳씩 방문을 이어간 왕 청장은 지난달 29일로 65차 ‘다파고’를 마치며 총 170여회의 건의사항을 접수해 조치했다.
다파고에서 청장은 같은 나라에 같은 품목을 반복적으로 수출하는 경우에도 매번 사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는 방식이 불편하다는 건의사항을 접수, 올해 3월부터 이런 경우 ‘사전 수출허가’를 ‘사후 거래보고’로 대체하도록 했다. 또 수출이 이뤄지면 무기 기술료(수출액의 2~3%)를 기술 보유 정부기관(방사청, 국방과학연구소 등)에 내야 했으나, 우리 무기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내년까지 이를 면제해주기로 한 것도 다파고에서 착안했다.
수출 과정에서 해외 기관이나 업체에서 성능시현을 요구하면 장비 운송과 시험장 사용 등의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것도 다파고 건의사항을 반영한 결과다.
청장은 다파고를 시행하면서 ‘현장에 답이 있다’는 원리를 몸소 체감했다고 한다.
그는 “현장을 가보면 ‘우리 중소 방산기업들이 이렇게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놀랄 때가 많다”며 “또한 현장에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애로사항이나 요구사항을 들을 수 있어 정책적으로 많은 참고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방산전시회가 대부분 취소되는 등 방산 수출 분야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에 방사청은 외교부와 협조해 방산수출 관련 인원의 출입국 절차를 돕고, 중소기업의 사이버전시관 홍보 컨텐츠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등 긴급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다.
왕 청장은 “앞으로 방산협력국의 코로나19 대응 상황, 국방비 감축에 따른 무기체계 획득 계획 변화를 지속 모니터링하며 수출 기회 확대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