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여성의원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뉴스24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사실을 알았던 정황이 의심되는 가운데 관계 기관이 “알려준 적 없다”거나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청와대에는 보고했으나 서울시나 박 시장에게 알린 적은 없다”고, 청와대는 “(박 시장에게)관련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서울시는 “피소 사실을 아예 몰랐다”고 각각 밝혔다.

박 시장은 지난 9일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성추행 피소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 시장을 고소한 전 비서 A씨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에 따르면 고소장은 지난 8일 오후 4시30분께 서울지방경찰청에 접수됐다. 고소인은 접수 직후부터 9일 오전 2시30분까지 1차 진술조사를 받았다.

이에 박 시장이 피소 사실을 파악한 시점은 고소장이 접수된 8일 오후와 본인이 일정을 취소하고 관사를 나선 9일 오전 사이로 좁혀지지만 박 시장이 피소 사실을 정확히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고소인 측 변호인 등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서울시장의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적 수사 시작되기도 전에 증거인멸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목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성추행 고소 사건의) 수사 상황이 ‘상부’로 보고되고 ‘상부’를 거쳐 그것이 피고소인에게 바로바로 전달된 흔적이 있다”며 경찰 수뇌부나 청와대를 통해 박 시장에게 피소 사실이 전달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보 유출 의혹에 대해 경찰과 청와대는 부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소 사실이 박 시장한테 전달된 경위는 알지 못한다”며 “경찰은 서울시와 직접적인 접점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의혹은 난센스”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에는 알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행정부 각 부처는 중요한 사안을 대통령 비서실에 보고해야 한다. 8일 박 시장에 대한 고소를 접수한 뒤 청와대에 알렸다”고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박 시장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관련 보도를 반박했다.

박 시장이 피소 사실은 8일이나 9일 알게 됐더라도 전직 비서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려고 한다는 움직임은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김재련 변호사는 이날 “올 5월 12일 피해자를 1차 상담했고 26일 2차 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피해 내용에 대해 상세히 듣게 됐다”며 “하루 뒤 5월 27일부터는 구체적으로 법률적 검토를 시작해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소 사실에 대한 피고소인 전달과 관련해 피해자가 시장실에 암시한 적 일절 없다. 담당 수사관에게 기밀을 유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이와 관련해 “인권담당관이나 여성가족정책과 등 공식 창구로는 관련 사항이 신고로 접수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박 시장의 피소 사실은 9일 박 시장이 잠적한 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파악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 시장이 늦어도 9일 오전 피소 사실을 파악한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관련 기관들 모두가 알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관련 수사나 진상조사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추행 사건 자체는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으나 부적절한 정보 유출이 발생했을 개연성을 시사하는 정황이 있는 만큼 이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