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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 12만원 공공기숙사 빈방 넘친다고?
외곽 입지 학교까지 멀어 학생외면
외곽 입지 학교까지 멀어 학생외면
“대학원등에 개방 등 개선 필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걸 별로 못 봐요.”

지난 3일 강서구 ‘내발산동 공공기숙사’ 앞에서 만난 대학생 한모(20)씨의 말이다. 충청남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개학을 앞둔 지난달 말 이곳에 들어왔다. 내심 학생들로 시끌벅쩍한 분위기를 예상했으나 그렇지 않아 조금은 놀랐다고 했다.

새학기가 시작됐지만 서울에 있는 일부 공공기숙사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방들이 적지 않다. 특히 서울시와 지자체가 함께 설립한 내발산동 공공기숙사의 사정이 나쁘다. 지방 출신 학생들에게 작은 보금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숙사엔 모두 193개실이 마련돼 있다. 최대 382명이 살 수 있다. 이 가운데 30실은 서울시 보유분이다. 나머지 163실은 순천, 광양, 나주, 남해, 태안 등 12개 지자체가 수요에 따라 차등으로 나눠 가지고 있다. 1~2월 각 지자체는 서울과 인천 소재 대학에 다니는 지역 출신 학생을 대상으로 입사생을 선발한다. 4일 서울시와 SH공사 등에 따르면 이 기숙사에는 현재 서울시가 보유한 30실 중 20실이 빈 채로 남아 있다. 지자체들이 관리하는 방도 30~40% 가량이 공실이다. 서울시 담당자는 “각 지자체들이 빈방을 남기지 않으려 늘 노력하는데 순천, 나주 같이 보유실이 많은 곳엔 공실이 생긴다. 저마다 적극적으로 홍보에 매달리면서 최대한 채우려고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기숙사의 개인부담금은 식비를 제외하고 한달에 12만원. 서울시내 대학 주변의 원룸에 들어가 살려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60만원은 기본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런데도 왜 빈방이 생긴 것일까. 학생들은 기숙사의 입지를 언급한다. 내발산동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기피한다는 거다.

동국대 학생 류모(20)씨는 “학교까지 가는데 1시간30분은 생각한다. 과학기술대(공릉동)에 다니는 친구는 2시간을 잡고 나간다”며 “수강신청에서 아침 1교시 수업은 가급적 뺀다“고 했다.

1년 살기로 계약을 했더라도 중간에 방을 빼는 학생도 많다. 방 하나가 아예 비어 있거나 2명이 사는 방에 한 명만 지내기도 일쑤라고 학생들은 이야기한다. 경희대에 다니는 김모(21) 씨는“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오래 살 수 있다는 건 (내발산 공공기숙사의) 장점”이라고 했다.


지난 2014년 서울시 강서구 내발산동에 들어선 공공기숙사.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주거 고민을 덜겠다는 취지로 마련됐으나 새학기에도 비어 있는 방이 꽤 많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서울의 또 다른 공공기숙사의 사정은 다르다. 교육부와 서대문구청이 부지를 제공하고 사학진흥재단과 국토교통부의 공공기금을 활용해 지은 홍제동 연합기숙사는 방이 없어서 난리다. 올초 신규 모집에서 180명을 선발하는데 900명 가량이 신청서를 넣어 경쟁이 치열했다.

이 기숙사 행정실 관계자는 “이화여대, 명지대, 상명대, 연대 등 인접해 있는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전체 입사생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입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시는 시가 보유한 방을 지자체들에게 넘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실도 이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지방 학생들을 돕는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며 “다음 주까지 일부 지자체와 협의해 관리권을 넘기고 이 후에도 남아 있는 공실은 이달 중순에 모집 공고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은 “학교까지 접근성이 떨어지는 까닭에 주거비가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외면하는 상황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기숙사를 떼어다가 도심으로 옮길 수도 없는 노릇. 대학생에만 국한된 입주자격을 넓히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기숙사생 선발과 운영을 전담하는 SH공사 측은 난색을 표했다.

임 위원장은 “애초 대학생을 위한 취지로 지어졌더라도 실질적으로 대학생에게 메리트가 없는 지역이라면 대학원생이나 주변에 일터가 있는 사회초년생까지도 살 수 있게 할 수 있는 제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준규 기자/whywh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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