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가수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스타를 꿈꾸죠. 비록 지금 거리에서 땀을 흘리고 누구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명일지라도, 좋은 곡을 부른다면 언젠가 대중이 알아줄 것이란 기대도 없지 않을 테고요.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순진한 발상입니다. 좋은 멜로디와 가사를 가진 곡들이 입소문을 타고 대중의 인기를 얻는 사례는 이제 무용담에 가깝습니다. 철저한 기획과 대형 자본의 투입이 없으면, 스타로 떠오르는 커녕 방송에 얼굴 한 번 들이밀기 힘들어진 세상이기 때문이죠.
돈의 움직임을 가장 냉정하게 바라보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증권사입니다. 최근 증권사들이 분석한 아이돌 제작ㆍ데뷔 비용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어마무시’ 합니다. 개천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용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스타도 더 이상 개천에서 나오지 않는 세상입니다.
▶ 신인 아이돌 제작비용 ‘5억원+α’= 최근 하나금융투자는 신인 아이돌 그룹의 데뷔과정과 수익구조에 대한 분석을 담은 보고서 ‘남자 아이돌이 군대에 간다’를 내놓았습니다.
보고서는 “연습생으로 발탁되면 회사에서 노래ㆍ연기ㆍ성형ㆍ인성 교육 외 의식주 비용에 대한 투자를 하게 되고, 데뷔까지 수개월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운 투자가 이뤄진다”며 “신인개발비를 공시하는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연간 7~9억 원 정도의 비용을 사용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연습생 풀이 20~30명임을 가정하면 연습생 1인 당 최소 2500~3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또한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까지 기간을 평균 3년, 멤버 수를 5명으로 가정하면 최소 약 5~6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기훈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인 아이돌이 데뷔해도 1집부터 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소 2~3집까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지속적이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며 “데뷔 후 2~3년 내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미 누적 적자만 10억 원이 넘어 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데뷔 2~3년차에서 히트를 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기자가 기획사의 대표라면 아이돌 제작은 별로 뛰어들고 싶지 않은 사업입니다.
▶ 데뷔 활동 기간 소요 비용 또 ‘5억 원+α’= 흥국증권도 최근 신인 아이돌의 데뷔 활동비용에 대해 분석한 보고서 ‘스타가 만들어지기까지’를 발표했습니다. 아이돌 그룹은 대개 사전 마케팅을 거친 후 본격적으로 지상파 3사의 음악방송에 출연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약 6주간의 공식 데뷔기간을 갖습니다. 이 보고서는 이 기간 동안에 소요되는 구체적인 비용을 분석해 눈길을 끕니다.
우선 곡 작업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곡(3곡 기준)을 외부 작곡가로부터 받는데 약 1500만원, 녹음하는데 1200만원이 듭니다. 뮤직비디오 제작에 드는 비용은 더욱 큽니다. 이 보고서는 뮤직비디오 1편 기준으로 촬영, 후반작업, 사진 촬영 의상, 미용, 안무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1억 5000만 원 이상으로 추산했습니다. 앨범 재킷 사진도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사진 촬영, 스타일리스트 인건비, 의상, 미용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합하면 2000만원 이상입니다.
요즘엔 ‘바이럴 마케팅(누리꾼이 이메일이나 다른 전파 가능한 매체를 통해 자발적으로 어떤 기업이나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널리 퍼뜨리는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이죠? 걸그룹 이엑스아이디(EXID)처럼 ‘직캠’이 얻어걸리지 않는 이상 비용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보고서는 ‘바이럴 마케팅’에 소요되는 비용을 1억 500만원으로 봤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의외로 프로모션용 앨범 제작비용은 여러분 생각보다 훨씬 적습니다. 장당 2000원에 1000장을 찍으면 약 200만원입니다.
이제 준비를 마쳤으니 음악방송에 출연해야 합니다. 이제 부터 움직이는 순간 모두 돈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안무창작비에 500만원, 안무팀 인건비에 1000만원, 무대의상 제작(6주 24개 음악방송 5인 출연기준)에 1억 7000만원, 방송미용에 1000만원이 들어갑니다.
이 모든 비용을 합하면 아이돌 제작 비용과 맞먹는 5억원 이상입니다. 바이럴 마케팅을 제외해도 4억원 이상입니다. 어마어마하죠?
▶ 신인 제작ㆍ데뷔 비용 최소 ‘10억 원+α’= 두 보고서를 토대로 신인 아이돌 제작비용과 데뷔 비용을 더해보면 무려 10억원 이상이라는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옵니다. 요즘 ‘로또’ 1등 당첨금도 세금을 떼면 10억 원이 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말입니다.
기획사 입장에서 연습생 발탁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부담을 짊어지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가수 지망생이 연습생으로 발탁되는 일조차 쉽지 않죠. 이런 힘겨운 과정들을 거친 아이돌 그룹만 매년 50개 팀 이상이 쏟아져 나옵니다. 여자친구, 러버소울, 써스포, 씨엘씨, 디아크, 포켓걸스, 오마이걸, 큐피트, 로미오, 몬스타엑스, 엔플라잉, 베이비부, 텐텐, 세븐틴, 아샤, 어썸베이비, 에이프릴, 마이비, 유니콘, 짜리몽땅, 업텐션, 에이스, 다이아, 아이콘 등등 올해 들어 데뷔한 아이돌들만 해도 수십여 팀입니다. 여러분은 이들 중 몇 팀이나 알고 계신가요? 그리고 이들 중 내년에 몇이나 살아남게 될까요?
그리고 지금 잘 나가는 아이돌들의 미래도 모두 장미빛인 것은 아닙니다. 아이돌의 수명은 보통 5~6년 남짓이고, 원하든 원치 않든 홀로서기를 해야 할 시기를 맞습니다. 그리고 대개 사라져 버리고 말죠. 저 매력적인 아이돌들이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가요계에서 활약하고 있을까요? 지금의 매력과 인기를 잃게 되면 저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경쟁과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지 못하면 발조차 들일 수 없는 세계. 아이돌 세계도 요즘 말로 ‘헬조선’처럼 보이는 것은 기자만의 착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