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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황석정, “대세? 먼지바람을 일으키기 보단 그저 저벅저벅”

  • 기사입력 2015-05-2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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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요즘 ‘맛집’으로 뜬다는 서대문구 연희동 중심가에서 몇 분 걸어올라가면 인적이 드문 홍제천이 나온다. 홍제천을 마주한 자리에 ‘황씨네’라는 작고 아담한 가게가 있다. 시내버스만 드문 드문 지나다니는 이 곳엔 황석정 삼남매가 자리잡았다. “단골들이 주로 온다”는 ‘황씨네’에선 황석정의 ‘민화 선생님’이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단골손님 ‘형석씨’가 오랜만에 들른다. 부러 광화문에서 위치를 묻고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다. ‘황씨네’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황석정의 집이 나온다. 40년이나 된 아파트에서 그는 열두살 된 삽살개 대박이와 함께 살고 있다. 대박이와 처음 만난 10여년 전 이 곳에 정착했다. 이제 이웃들은 힘든 일을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고향 부산을 떠나온 이후 황석정에게도 대박이에게도 연희동은 제2의 고향이자, “돈이 없어 답답하고 힘들 때 대박이의 손을 잡고 한강까지 거닐며 환경에 기대 마음을 달랜” 곳이다. 남자친구들도 이 곳에서 숱하게 만났고 헤어졌다.

황석정 인터뷰.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신스틸러이고,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며 ‘예능대세’로 떠올랐지만 황석정(45)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곳에 머무르며 같은 사람들과 한 정서를 공유하니 이전과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난 며칠 사이엔 출연 중인 JTBC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보고 있다’의 개편으로 선배 배우 김부선을 통해 때 아닌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 약속된 인터뷰”였다는 이유로 지난 24일 저녁 마주했지만, 일련의 논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 ‘예능대세’? "찌질한 옆집누나" =인기 스타들의 혼자 사는 삶을 관찰카메라로 담아내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건 지난 5월 1일이 처음이었다. 방송 이후 인터넷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 한예종 연극과 졸업이라는 ‘고스펙’, ‘19금 에로물’로 연기교재 삼는다는 독특함, 별 일 없는 날에도 김밥공장에서 습득한 재주를 발휘하며 나누고 싶어하는 소박한 마음은 인상적이었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여배우의 주머니 가벼운 삶의 형태는 두고 두고 회자됐다.

“너무 놀랐죠. 제가 출연한 프로그램 모니터를 잘 안 해요. 드라마는 TV에서 보는데, 예능은 아직이요. 영화 찍을 때도 모니터를 잘 안하고요. 쑥스럽고 어색하고, 아직도 겁나요. 여기에서만 왔다 갔다 하니까 사실 반응을 잘 몰라요. 예능에서 어떤 모습을 봐주셨기에 그렇게 난리가 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인터넷 상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제 모습이 이상하죠. 저는 똑같은데, 저 멀리 있는 저 사람은 누군가 싶어요.”

황석정 인터뷰.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데뷔 당시부터 험하고 악한 연기를 주로 해왔던 황석정은 지난해 ‘미생’ 이후 시청자들에게 각인됐고, 현재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를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가 된 늦깎이 스타다.

“어렵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전에 비한다면 지금의 황석정은 ‘옆집 누나’ 같은 사람이 됐다. “어머, 석정씨예요?” ‘황씨네’의 야외 테이블(이라기엔 편의점 앞을 연상시키는 규모다)에 앉아 진행한 인터뷰 동안에도 오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건넸다. 20대 대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 황석정은 마치 익숙한 지인을 만난듯 머리 끝까지 손을 들어 연신 흔든다. “어? 아는 사람인 줄 알았네” 그제서야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오랜 시간동안 불편한 제 자신을 바라보며 사람들과 선을 그었는데, 이렇게 편한 사람으로 대해주시니 신기하다”고 한다. “시집 못 간 찌질한 옆집누나를 보는 기분”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그동안 힘들게 살아오며 참고 견뎠던 순간들이 좋은 방식으로 결합해 건강한 열매를 만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가진 것을 잘 결합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과제가 제게 주어진 거죠.”

▶ 인간 황석정, "말 없고 쓸쓸했던 어린시절" =“음악도, 무용도, 우리의 삶도 다 연기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한 판 연극이고, 우린 그 안의 배우일뿐이죠. 세상이라는 한 판 놀음을 하는 배우요.”

‘인간극장’을 보는 듯 담백했지만, 문득 문득 튀어나오는 배우다운 ‘황석정의 드라마’는 불현듯 반 세기를 걸어올라갔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던 인민군 포로가 남한으로 전향해 부산에서 엘리트 아가씨를 만났다. 황석정 부모님의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평생 아티스트였어요. 군악대에 10년을 계셨고, TBC 방송국 악단에선 트럼본을 불었죠. 부산엔 캬바레가 많았는데 그 무대에도 섰죠. 멀리 떨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술에 젖어든 과묵하고 슬픈 분이었어요.”

황석정 인터뷰.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서울 소재 대학의 성악과에 입학하고도 할머니의 반대로 음악의 꿈을 접은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가족에 헌신했다. “한이 많고 불우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다”고 황석정은 떠올린다. 자신의 꿈을 장녀가 이루길 바랐기에 학생회비도 내지 못하는 살림에도 황석정은 피아노를 쳤다. ‘음악의 길’을 정한 뒤엔 국악 공연을 접한 감동의 여운으로 피리를 불게 됐다. 부산여고 재학시절엔 야자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무덤가에서 피리를 연습하던 기인이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건 부모님, 조부무님으로부터 받은 유전자와 정서적 영향의 총체라고 생각해요. 한도 유전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싫어도 고스란히 내 삶에 들어오고, 사고의 습관을 형성하고, 트라우마가 되죠.“

중간에 끼인 장녀로의 황석정의 어린시절은 걸쭉한 사투리를 속사포처럼 내뱉는 브라운관 속 여배우의 모습과는 다르다. 엄격하기만한 어머니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아이답게 놀기 보단 한 살 아래의 여동생을 돌보기에 바빴던 누려야할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한 아이였다. ”어릴 때의 저를 생각하면 참 슬퍼요. 말이 없었고,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외롭고 쓸쓸한 아이였죠. 그 시절에 채우지 못한 걸 성인돼서야 채우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의 꿈대로, 음악을 공부했고, 악기를 다룰 때 “가장 행복했다”지만,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는 또 다른 꿈의 싹이 피어났다. 

황석정 인터뷰.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황석정이 연기의 길로 접어들게 됐던 것은 우연은 아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우리의 인생이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의기투합한 황석정은 부산여고에 새 역사를 만들었다. 25분짜리 ‘허생전’을 만들어 학교에선 가장 보수적이었던 교감선생님께 허락을 맡은 뒤 무대에 올린게 계기가 돼 ‘연극반’이 생겨났다. ‘허생전’에서 황석정은 주인공을 맡았다.

서울대 재학시절 한양레퍼토리에서 올린 연극을 본 뒤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극단으로 찾아갔다. 선배 설경구는 황석정의 연기는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면서 “연기해, 넌 연기해야돼”라는 말도 건넸다. 허드렛일을 도맡아한 프로 극단 생활에서 가슴에 품고 지낸 말이 힘이 돼 1995년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배우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 배우 황석정, "연기는 저를 인간답게 살게 했죠" = 돌아보면 누군가와 어울리는게 서툴렀던 황석정은 스스로를 “독선적이고 편견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른 길을 가려다 들어선 이 길은 황석정에게 “편향된 사고를 풍성하고 균형잡히게 만들어주는” 매개였고, “어린시절의 상처를 치유해준 직업”이었다. “함께 모여 창작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어요. 내분도 많지만 흥분되고 재밌었어요. 그게 행복이잖아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잘 못하는 의심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독선적인 생각이 깎여 둥근 원을 만들어가죠. 저를 한 인간으로서 살게 하고, 균형 잡히게 만들어줬어요.”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만난 억척스러운 아줌마들을 지켜보며 ‘식샤2’의 집주인 김미란을 완성하고, 직장생활을 해본 적 없지만 ‘미생’의 재무부장 역으로 ‘실사판’ 연기를 선보이기에 황석정을 부르는 또 다른 수사는 식상해도 브라운관의 ‘미친 존재감’이다.

“연기를 하는 것, 방송을 하는 것 역시 일상”이기에 애써 꾸미지 않아도 드러나는 자연스러움이 시청자의 마음도 움직였다. 황석정에겐 여전히 쉽지 않은 일 역시 연기라고 한다.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환경적인 영향으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죠. ‘아름답다’거나 ‘좋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요. 제 안에 없던 감정들을 여러 단계를 거쳐 표현하는 과정이 힘들죠. 모든 배우들이 뭐든지 다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다들 같은 고민이 있을텐데, 제 경우엔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편하게 표현하는 감정들을 관찰하고, 내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했던 노력이 조금 더 생생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배우가 되고 안해본 말들을 표현하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그게 기본이더라고요.”

황석정은 그럼에도 “배우는 누구나 될 수 있다”며 “연기는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솔직하고 실질적인 감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배우는 인간을 보는 감각, 인간을 해석하는 감정이 예민하지 않으면 특별한 배우는 되기 힘들다”며 “연기를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자신을 넓혀야 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연기관을 전했다. 

황석정 인터뷰.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 “강가의 버드나무처럼” 굳건한 삶=황석정이 살아온 그리 평범하지 않은 시간들을 그는 “깊게 뿌리내려 거센 바람에도, 홍수에도 살아남는 강가의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어린시절 부모님에게서 받은 정서적 영향들이 지대했고, 그 시절의 상처와 고통이 저를 지배했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살아온게 지금까지의 제 삶인 것 같아요.”

대중의 환호를 받고, 시끄럽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의 주인공이 되고, 간혹 외모를 타박하는 댓글에 시달리는 유명세를 안는 만큼 찾는 곳도 많아졌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들어오고,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소속사도 없이 스케줄 관리를 혼자 해내고, 분장도 의상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생활배우다. 그래도 “불편하지 않게 다가와주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소중함을 알기에, “매일 매일이 기회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다만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말이 되기보단 그저 저벅저벅 걸어나가고 싶다”고 한다.

“배우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성숙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든지 최고라는 생각이 들어요. 난 죽어도 배우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죽으면 못하죠.(웃음) 각기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하나의 가치를 향해간다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아닌가요.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며 저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과정인거죠.”

/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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