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부는 오는 23일 끝나는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위기 등 비상국면에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인데, 앞으로 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는 2011년 700억달러까지 늘었지만 100억달러로 줄어들었고, 이번에 잔고가 완전이 ‘0’이 됐다. 비상금이야 많을수록 좋지만 통화스와프 계약을 끝낸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이 3600억달러로 비교적 충분한데다 유동성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1200억달러에 이르는 단기 외채가 한꺼번에 다 빠져 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다. 실제 16일 서울외환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번 결정이 정치적 갈등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일본의 편협함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 위안부 논란 등으로 양국 관계가 경색되자 통화스와프를 무기로 한국의 자존심을 거드려 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한국이 먼저 요청하면 통화스와프를 연장할 수 있다는 일본의 입장 피력이 그런 맥락이다. 말하자면 먼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수는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다. 통화스와프는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지 어느 일방을 도와주는 계약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로선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는 없다는 한국 정부의 판단은 옳다.

한일 통화스와프 종료가 당장의 타격은 없다고 하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유동성 관리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외환보유액이 넉넉하다지만 장담할 일은 아니다. 러시아는 세계 네번째 외환보유국이지만 원유가격 하락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자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는 통화위기를 겪었다. 더욱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신흥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된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자본 유출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 재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원화의 국제화를 통해 태환성을 높이는 근본적 과제에 더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