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안하는 사회…'욱질범죄' 키운다
홧김에 ‘욱’…열받아서 ‘욱’…이별통보 여자친구 승용차로 들이받고 계약문제로 다투다 시너붓고 분신까지…분노·충동조절 장애 보편화 앵그리 사회로
홧김에, 욱해서, 열 받아서 즉흥적으로 벌이는 충동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발달한 나라라서 범죄도 LTE급인걸까. 생각을 안 하는 사회 문화 속에서 범죄도 머리를 거치지 않다 보니 욱한 감정을 실행에 옮기기까진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충동범죄는 예상이 어렵다는 면에서 치안엔 치명적 요소다. 세계적으론 우리나라는 위험국으로 인식되게 만들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헤럴드경제는 다섯 차례에 걸친 기획 시리즈를 통해 충동조절장애 수준에 이르게 된 우리나라의 현실과 원인, 대책과 더불어 또 다른 충동범죄인 자살 문제, 충동문화의 온상인 인터넷 규제의 개선점 등을 짚어본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때부터 중국인들이 군자국(君子國)이나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할만큼 선비의 나라로 불려졌다. 상대에게 쉽게 성을 내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등 기품이 있는 선비 정신을 자랑하던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들어 사소한 일에도 욱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충동 범죄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4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승용차로 4차례나 들이받은 사건과 한 마트 직원이 사장과 임대차 계약 문제로 다투다 몸에 시너를 붙고 분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같은 ‘욱질’ 사고가 만연하고 있어 우리의 사회적 기질도 점차 ‘욱질(質)’로 바뀌고 있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새해들어 특히 운전과 관련된 욱질 범죄들이 많았다. 지난달 4일엔 수원의 한 주택가 도로에서 운전 시비 도중 차에서 내린 상대 운전자를 홧김에 승용차로 들이받은 사건이 있었다.
15일엔 고속도로에서 차로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 차량에 철제 삼단봉을 휘두른 사건도 있었고, 바로 그 다음날엔 끼어들기 시비가 붙은 상대 차량 운전자를 가스총으로 위협한 일도 발생한 바 있다.
앞서 재작년엔 평택에선 단순히 웃는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며 한 40대 남성이 승용차로 행인을 치어 1명을 살해하고 11명을 다치게 한 사고도 있었다.
작년 8월엔 청주에서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통보 없이 입양시켰단 이유로 애견센터로 차량을 몰고 돌진해 사람을 숨지게 하는 등 욱질사고는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예측이 어렵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가 욱질사회로 변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사회적 환경이 각박해졌고 공동체 의식도 많이 사라져서 그렇다”며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으면 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평소에 울분을 쌓아두는 우리 국민들은 청문회만 봐도 다들 욱한다”며 “억압된 울분을 폭발시킬 계기를 찾는데 그 순간은 비합리적 순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합리적 경로를 통해 터져 나오기 때문에 그 순간엔 자제를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일종의 날카로운 긴장의 시대에 있다고 볼 수 있고, 점점 이런 빈도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작년 22사단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땅콩회항’ 사건, 청와대 폭파 협박 사건 등도 모두 욱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발생된 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경제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다같이 배곯던 헝그리(hungry) 사회에서 욱질이 일상화된 앵그리(angry) 사회로 변해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였던 성호 이익(李瀷·1681∼1763) 선생은 선비는 굶주림, 추위, 곤궁함, 수고로움, 노여움, 부러움 등 6가지에 대한 인내를 힘써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점차 앞의 3가지 것보단 점차 뒤의 3가지 것들을 참지 못하는 공동체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스마트폰의 일상화 등으로 사색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풍토, 속도만 강조하고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도 요인이 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설 교수는 “교육기관이 정글의 야수를 가르치는 곳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경원ㆍ이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