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러드경제=이정환 기자]#.직장인 이석철(가명ㆍ42)씨는 몇일전 2014년을 마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하늘을 날아 다니는 작은 장난감을 선물했다. 바로 어릴적 자주 갖고 놀던 장난감이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휘재가 한해를 마감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무선 헬리콥터를 선물하는 장면을 본 후 어릴 적 향수에 젖어 과감히 몇 십만원을 들여 최근 핫 아이템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을 한 대 구입한 것.

#.남편과 맞벌이하는 홍수정(36)씨. 홍씨는 가끔 점심기간 때면 회사 근처에 위치한 작은 분식점에서 2000원짜리 김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운다. 하지만 식사후엔 근사한 카페에 들러 1잔에 5000원하는 원두 커피를 마신다. 홍 씨는 “예전에는 된장녀라며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이젠 5000원으로 삶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5000원짜리 커피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지갑이 얇아졌다고 소비를 향한 욕구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제약으로 소비 욕구를 억제하다 보면 피로감이 쌓이기 마련이다. 소비 욕구를 발산하려는 욕망과 현실적 제약이 맞물리면서 최근에 자신만을 위한 ‘작은 사치’가 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잠시나마 삶에 활력과 행복을 주는 ‘작은 사치’. 이러한 ‘작은 사치’가 대한민국 소비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헤럴드 트렌드 리포트 <6.‘세일공화국’에서 찾는 ‘작은 사치’> “작은 사치로 큰 행복을 삽니다”

▶‘작은 사치’로 큰 행복을 삽니다=입맞이 까다로운 파리지앵과 뉴요커들이 즐겨먹는 포테이토칩은 한 봉지 가격이 1만원을 훌쩍 넘는다. 포테이토칩의 간을 맞추는 데 희귀한 히말라야 핑크 소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고가에도 이 제품은 줄을 서서사 먹을 정도로 인기다.

대한민국 부촌으로 소문난 서울 강남 인근 현대백화점(무역센터점) 식품관 디저트 코너. 지난해 7월 디저트 코너에 오픈한 ‘피에르 에르메’ 매장은 구름떼처럼 몰려든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피에르 에르메’에서 판매하는 마카롱 디저트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이 매장은 이날 첫 오픈직후 단박에 4000만원의 매출을 올려 해당 업체는 물론 백화점 관계자들 조차 깜짝 놀랐다. 소위 물 건너온 수입 디저트라지만 개당 4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1시간이상 줄을 서는 등 진풍경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오픈한 미국 시카고에서 온 가렛팝콘도 가격이 봉지당 4200~1만5000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하루 매출이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커피업계서도 ‘스타벅스 리저브’와 ‘엔제리너스커피 스페셜티’을 중심으로 일반 커피보다 2~3배 가격이 비싼 스페셜티 열풍이 거세다. ‘스타벅스 리저브’의 경우 하루 판매량이 드립커피대비 40%가량 상회하는 등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잠시나마 삶에 활력과 즐거움을 주는 입안의 작은 사치가 새로운 소비 트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작은 사치는 사치스러운 느낌은 들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고가 제품의 소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작은 사치’가 존재하는 소비 트랜드는 비단 디저트 시장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수입자동차 시장에서도 ‘작은 사치’가 새로운 트렌드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수입차 부문에서 2000만~3000만원대의 소형차 판매량이 전체 수입시장의 절반을 넘어섰다. 다른 비용을 절약하는 대신 자동차에 지불 비중을 늘리는 젊은 직장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수입자동차를 보유한 대기업 4년차 직장인 이민철(가명) 씨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점심 값과 저녁 술자리를 줄이면서까지 왜 수입자동차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제발 좀 분수에 맞게 살아라” 등 잔소리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질문”이라며 “나는 외제차 구입이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입자동차를 구입한 게 아니라 나의 행복을 산 것이다”고 말했다.

마카롱이나 수입차같은 소비 트렌드는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가계 부채 등에 의한 구매력 저하 및 경기 침체 장기회로 소비 위축과 가격저항력이 커질 것으로 전당된다”며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적은 지출로 만족감을 느끼는 작은 사치가 급속히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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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치가 유통가를 바꾸다=작은 사치의 대명사인 ‘고급 디저트’ 열풍은 편의점과 식품업계의 흐름마저 180도 바꿔 놓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1~3월 착즙주스와 농축환원 주스 등을 비롯한 프리미엄 냉장 주스의 매출은 전년대비 18.6%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은 마카롱을 PB제품으로 내놨고, 수입식품 전문업체 에스피에프는 7700원짜리 탄산수를 선보였다.

이같은 변화는 백화점 선물문화도 바꿨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20~60대 고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신을 위한 연말 선물을 준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한 고객이 95%에 달했다. 이는 전년 96%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만의 작은 사치인 ‘셀프기프팅’이 소비문화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롯데백화점이 최근 ‘나만의 작은 사치’ 좇는 셀프기프팅족을 타킷으로 감성 마케팅을 펼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백화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경기불황에 따라 개인의 만족도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큰 물질로 만족을 얻기 보다는 나만의 작은 기쁨과 만족감을 찾는 추세다”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만의 특별하고 차별화된 ‘작은 사치’ 소비 열풍은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사치의 불편한 진실은?=고도 성장기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있고,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엔 그같은 믿음이 힘을 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성장의 문호가 활짝 열렸을 땐 노력으로 꿈을 가질 수 있었지만, 성장의 여력이 미약할 땐 불투명한 미래를 좇기보다는 오늘을 충실히 살려는 의식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지난 2012년 제일기획이 발표한 대한민국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먼 훗날의 행복보단 현재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8.9%에 달했다. 현재의 만족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대목이다. .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대량 소비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작은 사치’의 확산을 키우는 요인중 하나라는 게 유통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맞벌이 부부인 이경화(29) 씨는 “한달에 50만원을 더 모은다고 해서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나요. 언제 올지 모르는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한달에 한번 정도 남편과 여행하고 이를 통해 삶을 활력소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속내를피력했다.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환경에선 주택 구매처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큰 소비를 통해 행복감을 얻기보다는 주변에서 적은 비용으로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소비 경향이 앞으로 더욱 확산될 공산이 크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 삶의 활력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작은 사치’를 발굴하는 것도 소비자에게 의미는 작지만 가치있는 소비 트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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