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지난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교동 카페 ‘벨로주’. 이곳에서 산문집 출간 기념 콘서트라는 조금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콘서트의 주인공은 현대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강백수였다.

강백수는 지난해 첫 솔로 앨범 ‘서툰말’을 발매해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으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같은 기세에 힙입어 그는 최근 앨범의 뒷이야기에 그동안 쓴 다양한 글들을 보태서 엮은 산문집 ‘서툰말(슬로비)’을 출간했다.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도, 출간 기념 사인회도 아닌 기묘한 형태의 콘서트가 가능했던 이유다. 무대 위 강백수는 결코 잘 생겼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충분히 멋있었다. 객석을 가득채운 관객들은 환호성과 박수를 쏟아내며 산문집 출간을 축하했다.

강백수 “굳이 애쓰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앨범을 향한 평단의 호평 중 팔 할 이상은 가사로 쏟아졌다. 강백수의 가사는 그가 지난 2008년 계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란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게 할 만큼 날 것의 질감으로 서걱거렸다. 여자 친구의 집 문 앞에서 돌아서서 막히는 도로를 뚫고 되돌아가야 했던 사연을 담은 ‘내부순환로’의 “오늘을 위해서 새로 산 팬티 입고 왔는데 벌써 나 이렇게 되돌려 보낼 건가요” 같은 가사는 쉽게 가사로 녹여내기 어려운 ‘지질한’ 경험의 산물이니 말이다. 가사는 철저히 그의 경험에 기초하는데, 산문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강백수와 꽤나 친해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싱어송라이터에서 작가로 변신한 강백수를 지난 24일 만나 인터뷰를 빙자해 다량의 ‘치맥’을 서로의 입속에 투여했다. 인터뷰는 무슨…….

▶ “나는 진짜 잘 지내고 있어요” = 강백수는 “시 쓰는 게 좋아서 시를 계속 썼는데 시인이 됐고, 노래하는 게 좋아 노래를 불렀는데 앨범도 내고 가수도 됐다”며 “사회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백수 “굳이 애쓰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스무 살엔 대학에 가야하고 스물한두 살엔 군대에 가야지. 스물여섯 스물일곱에는 취업을 하고 장가갈 준비를 해야지. 이것도 결코 진리가 아니다. 나에게는 중국 주나라 화북지방 절기만큼이나 머나먼 이야기였으니……. 커피를 시켰을 때 가을이 왔다. 입추가 와야 가을이 오는 게 아니라, 커피를 시켜야 가을이 온다는 말이다.”(37쪽 ‘주관적 절기’ 중)

강백수의 산문집은 그의 솔로앨범 속지의 확장판이라고 할만하다. ‘나쁜 노래’는 “공처럼 온 몸을 웅크린 채 주먹과 발길질을 받아내면서 더러운 바닥을 나뒹굴었지”라며 학창시절 ‘왕따’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필치로 더듬어 나간다. ‘벽’은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라며 오래전 첫사랑에 대한 패배감을 황당하게도 R&B 스타일로 풀어낸다. ‘감자탕’은 “예쁜 손톱에 들깻가루가 끼는데도 내게 감자탕을 발라주던 네가 있었다”며 철없는 어린 현재 여자 친구를 앞에 두고 떠나간 과거 여자 친구를 추억한다. ‘아이해브어드림’은 “내가 만약 일 억 원이 생긴다면 일 조 원어치 술 사먹을 거야”라며 대책 없이 낙천적인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멜로디와 가사로만 접했던 곡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백수 “굳이 애쓰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내가 그녀를 이길 수 없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녀보다 못나서가 아니라 그녀와 내 인생을 비교하는 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누구도 그런 비교를 내게 강요한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제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지어 부르고, 대중 앞에서 웃으며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판사나 검사가 될 수는 없는 법. 그녀는 법조인, 나는 딴따라. 각자 길을 올곧게 걸어가면 그만이다.”(89쪽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 중)

강백수는 “청년들이 스펙에 목숨을 걸며 우울해지는 이유는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 채로 끊임없이 거창한 목표를 강요당하기 때문”이라며 “다들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말을 하지만, 풍족하겐 못 살아도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엔 그리 어렵지 않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 진솔함은 지질함도 멋있게 만든다= 조금은 지질하게 들이대는 가사들이 지질함을 넘을 수 있었던 힘은 진솔함이다. 강백수는 “이래도 괜찮을까?”라는 의문점이 들 정도로 솔직하게 글을 써내려 나갔다. 진솔함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그의 노래 ‘타임머신’의 “아버지 육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차라리 잠실 쪽에 아파트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이 말만은 전할거야”와 같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독백과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노래한 ‘뒤통수도 예쁜 그대’의 ‘아파도 예쁜 그대, 뒤통수도 예쁜 그대. 따뜻한 봄이 오면 예쁜 머리핀을 꽂고 나들이 가요”와 같은 평범한 표현이 슬픈 가사보다 더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이유도 결국 그 진솔함 때문이다.

강백수는 “내게 중요한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닌 눈앞에 놓인 현실”이라며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은행에서 얼마를 대출 받았느냐였지, 나라가 얼마를 IMF에서 지원받았느냐는 아니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내 노래와 글이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는 도구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술친구처럼 내 노래와 글이 누군가에게 편안한 위로와 휴식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늦은 아침을 차려 먹고 아버지는 야구 하이라이트를 보신다. 나도 야구 하이라이트를 좋아하지만,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영화를 보거나 기타를 친다. 집 전화가 울리면 아버지와 나는 서로 눈치를 보고, 결국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버지도 나도 서로가 이 시간에 집에 있을 나이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십 대가 절반 이상 지나간 나는 물론이고 아직 오십 대인 아버지도 한창 일을 하고 있어야 할 나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12~13쪽 ‘두 남자의 따뜻한 침묵’ 중)

강백수의 꿈은 작고도 거창하다는 것 외엔 달리 쓸 만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노래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느라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못했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입대하게 될 텐데, 그때 아이돌들처럼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과 만나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래도 기자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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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안창용, 포토그래퍼 박지지, 한산신문 정용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