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부터 6개월째 정부-의료계 의정갈등 계속

“언제까지 이 사태 계속되나”…환자들, 답답함 호소

환자연합 대표 “정부도 의료계도 모두 책임 느껴야”

‘의료공백’ 벌써 반년…환자·의료진·병원 ‘모두 힘들다’
20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채혈실 앞에 환자들이 모여 대기하는 모습. 안효정 기자

[헤럴드경제=이용경·안효정·김도윤 수습기자] 의정갈등에 따른 의료공백 상황이 반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사직 전공의 대다수는 하반기 전공의 연장 모집에 끝끝내 답하지 않은 채 복귀하지 않았다. 의대생들은 수업 현장을 떠났다. 남겨진 환자들 사이에선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사례도 빈번하다. 의료진과 병원 역시 업무과중과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20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본격적인 이탈을 시작한 건 올해 2월 19일부터다. 앞서 정부는 의사단체와 함께 지역·필수 의료 개선을 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를 추진하고자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시작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지난 2월 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 결국 2월 19일 전공의 1만여 명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이탈했고, 작금의 의료공백 사태가 됐다.

하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에게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각 수련병원에 사직수리금지명령 등을 하는 등 강공을 펼쳤으나, 의료계는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원점 재검토’ 입장을 견지하며 무기한 휴진, 의협 총궐기대회 등으로 맞섰다.

정부는 지난 6~7월 각 대학병원과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명령을 철회하고 사직 여부와 상관없이 전공의들에게 행정처분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초 사직자는 1년 이내 동일 과목, 동일 연차로 지원할 수 없다는 규정을 완화하는 특례를 마련해 오는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도 나섰다. 하지만 이에 지원한 전공의들은 104명(인턴 13명·레지던트 91명)에 그쳤다. 모집대상 7645명 중 1.4%에 불과한 지원율이었다. 지난 16일 마감된 추가모집에서도 지원자는 21명(인턴 4명·레지던트 17명)에 그쳤다.

이 같은 의료공백 상황에서 제때 진료를 못받거나 응급실 이송이 지연되는 등 환자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더욱 가중됐다. 지난 14일 국회 교육위원회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구급대 재이송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119구급차 재이송 17건이 발생해 전년 한 해 치(16건)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전공의들의 이탈 이후 응급 환자가 병원을 옮겨다니던 끝에 사망하는 사례도 전국에서 속출했다.

20일 헤럴드경제가 서울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언제까지 의료공백 사태가 계속될지 답답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세브란스에서 만난 60대 폐암환자 A씨는 “6개월씩이나 이 사태가 길게 갈 줄 몰랐던 게, 이게(의대 증원) 이렇게까지 오래 갈 일인가 싶었다”며 “어떻게 정부나 의사나 한치의 양보도 없는건지 이해할 수 없다. 승자와 패자 나올 때까지 환자들은 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 위암센터를 찾은 80대 남성 환자 B씨는 “씁쓸할 마음 뿐”이라며 “난 어차피 하루하루 늙어가는 입장이지만, 특히 젊은 환자들은 얼마나 애가 타고 초조할까. 아파도 왜 하필 이때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했다. 폐암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김모(43) 씨는 “요즘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라고 해서 폐암 환자들은 특히 조심해야 되는데, 코로나는 감기보다 더 독하기 때문에 늘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며 “응급상황이 발생할까봐 식구들 모두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빨리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료공백’ 벌써 반년…환자·의료진·병원 ‘모두 힘들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환자들이 대기하는 모습. 김도윤 수습기자

이날 서울대병원에서도 중증질환과 응급환자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전립선암 투병 중인 유모(65) 씨는 “밤에 갑자기 몸이 안 좋고 다리도 붓고 소변도 잘 안 나오고 그래서 어제 새벽 2시에 병원에 도착했다”며 “다만 의료진이 없는 상황에 심정지 된 사람이 왔다고 언제 접수가 될지 모른다는 거다. 요즘 의료 파업이라 그런지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소변을 못 눠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하니 ‘소변이라도 먼저 빼줄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주겠다’며 병원 리스트를 주고 찾아가 보라 안내받았다”며 “밤새도록 동네병원 등 여기저기 갔다가 4번째에 건대병원에서 다행히 병상이 나와 응급조치와 검사를 받았다. 의사가 콩팥 기능이 떨어졌다고 해서 지금 다시 검사 받으러 서울대병원을 온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환자 손모(71) 씨도 “의료파업으로 백내장 진료가 어렵다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불편을 나타냈다. 안과 환자인 이석구(62) 씨는 “입원해있는 동안 안과 예약진료를 한번 빠졌다. 간호사가 안내문자라도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입원 중이어서 갈 수가 없었다”며 “오늘 병원에 가보니 파업이 끝나고 예약이 다차서 진료가 힘들다고 한다. 얼른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암 환자인 아내와 함께 대구에서 엠뷸런스를 타고 왔다는 김모(57) 씨는 “어제 저녁 6시에 도착해 (아내가)이날 새벽 4시께 진료에 들어갔다가 검사만 받고 지금 휠체어에 앉아있다”며 “구급차 안에서 9시간 40분 기다려서 엠뷸런스 비용만 올라오는데 50만원, 대기비용만 67만5000원이 나왔다. 기다리다 지치겠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의료공백에 따른 고통을 겪는 대상은 환자뿐만이 아니었다. 의료진들도 전공의가 떠난 업무 공백을 기존 전문의들과 간호사 등이 메꾸면서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 곳곳에선 의료공백을 견디지 못한 전문의들이 하나둘 병원을 떠나면서 응급실 운영에 파행을 겪기도 했다.

강원도 속초의료원은 지난달 응급실 전담의 5명 중 2명이 퇴사해 약 일주일 동안 응급실 문을 닫아야 했다. 충남 천안 순천향대천안병원에선 응급의학과 전문의 일부가 사직서를 제출하며 응급의료센터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충북대병원 응급실도 지난 14일 일시 진료를 중단했다. 이곳 응급실은 전문의 10명이 번갈아 당직을 서는데, 전문의 2명이 휴직 및 병가를 내면서 기존 당직 체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도 사정은 여의치 않다. 의정갈등 여파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대학병원이 속출했다. 최근 연세의료원은 소속 병원인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한 무급휴직 기간을 기존 40일에서 80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일반직 직원에는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보건의료직군 노동자가 포함됐다.

앞서 연세의료원은 전공의 이탈로 병원 경영난이 심화하자 올해 3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40일간의 무급휴직 신청을 받은 바 있다. 이 밖에도 의료진 내부의 갈등으로 의료공백 상황은 더없이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국회에선 간호법 제정을 재추진하자 의사와 간호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각 병원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20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의료공백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렇게 길게 집단행동을 한 적도 없었고, 집단행동을 하게 되면 환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치료를 제때 못해 사망하는 환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장기화 될 건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국민이 반년 넘도록 의료공백 사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제는 불편을 넘어 피해를 주는 선까지 온 것 같다. 의료행위는 의사면허만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특히 더 자괴감이나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의료공백’ 벌써 반년…환자·의료진·병원 ‘모두 힘들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병실로 이동하고 있는 의사의 모습. 김도윤 수습기자

안 대표는 향후 의정갈등 해소 방안을 두고 “처음부터 환자를 중심으로 두면 너무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그동안 2000명으로 의대증원을 발표한 것에 대해 의료계에서 충분한 숙의 과정이 없었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전공의들에 대해 행정처분을 안하겠다며 복귀하라 했는데도 일부 의대교수는 복귀한 전공의를 제자로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상황”이라며 “복귀하려는 전공의 명단을 공개하는 행태들을 보면 처음엔 정부의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이제는 의료계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병원을 안 갈 수가 없는 환자들이 있는데 속히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정부도 의사들도 환자 중심에서 이 사안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