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섭...정치부장

돈 벌이가 시원찮으면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것이 이치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다. 형편이 안좋아지고 있는데도 빚을 내 펑펑 돈을 쓴다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국가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3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부채는 1117조3000억원으로 전년의 902조1000억원 보다 215조2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이 가운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반드시 갚아야 할 국가채무만 483조원이다. 이를 인구 수로 나누면 국민 1명당 갚아야 할 빚은 961만원에 이른다. 이는 전년 882만원보다 79만원 늘어난 것이다. 수입보다 지출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정부의 재정건전성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6.4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남의 동네 불구경 하듯 딴청이다. 재원마련 대책도 없으면서 포퓰리즘 공약(대중영합성 선심 공약)을 쏟아낸다. ‘무료 대중교통‘, ‘무료 의료서비스’를 외치며 죄다 공짜로 해주겠다고 난리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는데, 유권자야 신이 날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들어갈 예산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지방정부의 재정상태가 중앙정부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미 여러 광역·기초단체들이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대도 공짜타령을 하고 있다면 지방재정을 파탄에 빠트리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공짜의 함정은 또 있다. 한정된 재원으로 새로운 공짜사업을 벌이려면 결국 다른 복지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무상급식이다. 강남에 빌딩 서너 채를 보유한 부유층 자녀(초등학생)에게도 공짜 점심을 제공하는 ‘통큰 복지’는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 대한 복지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최근 발표한 ‘민선 5기 전국 시·도지사 공약이행 평가 결과’는 공약남발의 정치실상을 낱낱이 드러냈다. 조사에 따르면 임기가 3개월 여 밖에 남지 않은 광역단체장들의 공약 2283개 중 실제 이행완료된 것은 24.7%에 그쳤다. 52.1%는 계속 추진 중이고, 나머지 23.2%는 아예 손도 못댔다. 공약이행률이 저조했던 것은 재정 문제가 가장 컸다. 이들 광역단체장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돈은 470조여 원으로 대통령 공약보다 135조 원이나 많았다.

유권자들은 이제 예전처럼 어리숙하지 않다. 지키지도 못할 공수표를 남발하는 정치인의 사탕발림에 넘어갈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복지를 제공하려면 재원조달의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하거나 지역주민을 담보로 중앙정부에 손을 벌릴 생각도 버려야 한다. 한 번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두 번, 세 번 정치인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이 어떤 상태인지’, ‘주민 복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뭔지’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고민할 시간은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윤재섭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