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전 한국은행 부총재가 차기 한은 총재로 내정됐다.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 국제 네트워크가 약한 게 아니냐는 일부 우려도 있지만 대체로 ‘무난한 인사’라는 평이다. 한은에서만 35년을 근무하며 요직을 두루 거쳐 통화와 국제금융에 대한 남다른 식견과 감각도 인정받았다. ‘독단은 없지만 강단 있는 인물’이라는 후한 평가도 나왔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중대한 결격사유만 없다면 2018년까지 4년 임기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뢰, 소통, 합리적 통화정책, 경기 활성화 등 벌써부터 그에게 쏟아지는 요구사항이 많다. 우리는 한은 총재에게 필요한 이런 많은 덕목 가운데 ‘균형감각’을 각별히 주문하고 싶다.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 합리적인 균형감각을 인정받아야 시장의 신뢰도 얻을 수 있고 소통과 설득도 가능하다. 혹 통화금리 정책에 이견이 있더라도 객관적이고 납득할 만한 의견을 낸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은행이 정부와 엇박자 내고 뒷북을 쳐 시장 신뢰를 잃은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해야 할 때 보수적인 금리정책을 펴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은 일이 있었다. 시장의 반응과 기대는 나 몰라라 하고 고집만 부리다 실기(失機)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좌회전 신호를 켜고 우회전한 꼴’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글로벌 금융시장 동요, 중국의 성장률 하향조정, 일본 아베노믹스 후유증,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대외 변수가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다. 안으로는 천문학적인 가계부채와 저조한 성장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따른 경기 부양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하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정부와 시장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이 우선이다. 정부로부터 임명받았다 해서 정부에 휘둘려선 안 된다. 어느 정부나 한은의 발권력을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고 싶어 한다.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에 섣불리 동조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에만 치우쳐 오판하는 것은 금물이다. 금리를 내릴 때는 과감히 내리고, 올릴 때는 확실히 올려야 한다. 다만, 그때마다 분명한 시그널이 필요하다. 모호한 발언으로 시장에 불확실성만 주다 무너진 한은의 권위와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이 후보자 역시 과거 통화정책 실기와 오판에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할 몫이 있다. 균형감각을 갖고 대내외 위기에 잘 대응해 통화 안정, 물가 안정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