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절차 간소화·규제 국제 표준화 등
매년 ‘ECCK 백서’에 대정부 건의 전달
韓, 하이테크·IT·제약 등 고부가 특화
北 통한 육상운송길 열리면 금상첨화
삼성·현대 등 대기업 보고 한국에 관심
韓 비즈니스 가장 큰 특징은 ‘네트워킹’
인천 경자지구에 물류시설 투자 검토
젊은 유럽 기업인 목소리 더 담을 것
디어크 루카트(Dirk Lukat)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회장 겸 쉥커코리아 대표이사는 국내 경제계에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30년 가까이 글로벌 물류업계에서 종사해 온 그는 한국 경제와 문화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냈다. 반면 지난 몇 년 동안 부침이 심했던 기업 규제 정책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루카트 회장은 최근 서울 마포구 쉥커코리아 사무실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해외에서) 장기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하도록 사업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CCK는 유럽과 한국의 무역·상업·산업적 관계 발전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 단체로 지난 2012년 설립됐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370여개의 유럽 기업을 회원사로 보유하고 있으며, 약 5만여명에 달하는 유럽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규제 정책 일방통행...이해관계자 목소리 반영돼야”=매년 ECCK가 발간하고 있는 ‘ECCK 백서’는 한국 정관계에 보내는 ‘쓴소리 종합세트’로 자리잡았다.
올해도 ECCK는 20여개 업종별 규제 이슈에 대한 가감없는 건의사항들을 두툼한 백서에 담아 지난달 발간했다. ‘해외 발급 코로나19 백신접종 증명서’ 인정을 비롯해 국내 거주 외국인 방역 규정 완화, 친환경 자동차 등재 행정절차 간소화, 국내 규제의 국제 표준화 등이 대표적이다.
루카트 회장은 “국내외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가 (한국에서는) 이해관계자·당사자들의 적절한 조언 없이 급하게 바뀌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며 “여기에 신규 정책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적절한 평가가 부족할 때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꼽았다.
그는 “또한 많은 요인들 중 급격한 정책 변화로 적지 않은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표준화와 관련 루카트 회장은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에서 많은 국제 표준이 고려되고 있지만, 때때로 한국적인 세부 사항이 포함되도록 수정되기도 한다”면서 “이제는 한국 안에서도 국제 표준화의 중요성이 부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실 국제 표준화는 외국 기업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며 “국내 표준만을 고수하게 된다면 외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드는 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한국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가격도 함께 올라갈 수 있다”고 밝혔다.
▶“韓 시장 여전히 매력적...北 활용 가능성 주목”=물류 전문가로서 한국 시장의 미래 성장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루카트 회장은 “국가 크기로 본다면 중국과 인도가 손에 꼽히겠지만 이들 나라와 달리 한국은 하이테크·IT·제약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특화돼 있어 비즈니스로서 많은 강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쉥커는 독일철도주식회사(DB) 그룹에 속해있는 글로벌 화물 운송 및 물류 서비스 회사다. 계약 물류·전시 물류·항공 운송·해상 운송·육로 운송 등 물류 서비스 전반을 담당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봅슬레이 장비와 방송 기자재 등의 운송을 전담했을 정도로 업계에서 신뢰성이 높다.
그는 물류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사람’을 꼽았다. 루카트 회장은 “온도와 충격 등에 민감한 반도체 장비를 운반할 때도 전문인력이 필요하며, 일반트럭이 아닌 특수트럭에 맞는 전문 운전수를 배치한다”면서 “국제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들이 물류 해결사로 나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북한 시장의 활용 가능성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루카트 회장은 “한국은 지리적으로 다소 고립돼 있는 구도”라며 “항공이나 해상 화물의 경우 컨테이너선를 활용해 도착한 이후 추가적으로 철도 등 육로를 이용해야 한다. 물류 비용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북제재 조치 해제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북한을 통한 육상 운송길이 열린다면 철도와 트럭을 활용해 중국·동남아시아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국과 유럽의 활발한 물류 교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벌 공부하며 한국 관심 키워...비지니스 제1원칙은 공감”=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자 루카트 회장은 한국어 그대로 “재벌(Chaebol)”이라 답했다.
그는 “부모님의 해외 업무로 인해 학창 시절 독일 외 국가에서 생활한 경험이 많았다”며 “국경 너머 전세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삼성·현대 등 한국의 대기업에 매료됐다. 이들의 극적인 성장 과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한국 비지니스의 특징을 ‘네트워킹’이라 평가한 대목도 흥미롭다. 그는 “한국 사회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대학교까지 끈끈한 네트워크가 기반이 돼 있다”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외국인 특히 한국에 단기간 동안 머무는 이들의 경우 네트워크 형성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하지만 교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루카트 회장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비즈니스 1순위 가치는 공감이다. 그는 “인간관계와 더불어 자연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공감이 필요하다”며 “개인적으로도 미래 세대에게 더 건강하고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가용 가능한 자원을 활용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 극복 위한 韓 정부·국민 노력 평가”=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과 관련 “문재인 정부와 한국 국민들이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하고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높게 평가한다”면서 “정상화를 위해서는 철저한 안전 교육과 시민들의 분별력 있는 마음가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ECCK 회장과 쉥커코리아 대표이사 두 역할 모두 중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미소지었다.
루카트 회장은 “쉥커코리아는 지금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의 물류 시설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화물 운송 과정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드론 개발업체와 협업 중에 있으며 물류 창고 활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기관들과 검토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ECCK 백서는 한국과 유럽 기업 상호 간 우호증진 및 원활한 비즈니스의 장 제공을 통해 한국 사회에 기여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ECCK 회장으로서 백서를 기반으로 한국 정부와 더 많은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ECCK에 속해 있는 젊은 유럽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도입한 ‘주니어 보드(이사회)’ 포럼도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 시작했다. 그는 “포럼의 목적은 젊은 기업인들에게 다양한 산업간의 네트워크 형성과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데 있으며. 25세부터 40세 사이의 기업인들에게 열려있다”고 말했다.
루카트 회장은 “특히 유럽 스타트업들이 한국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존에는 그들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주니어 기업인들의 아이디어들이 앞으로 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