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낸 작가로부터 면담 신청을 받았다. 반가움보다 걱정부터 앞선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작가들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면 관장이나 큐레이터와의 개별 면담을 추진한다. 개인전을 원하는 작가의 작품이 미술관의 운영 방침이나 정체성에 맞지 않은 경우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내부 회의를 거쳐 NO라고 알려준다.
문제는 작가도 훌륭하고, 작품도 미술관이 추구하는 전시 방향과 맞는 경우다.
생각 같아서는 적극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그 말을 선뜻 꺼내기는 어렵다. 십중팔구 거절하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게 될 테니까.
왜 개인전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을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개인이 설립한 비영리사립미술관의 경우, 개인전에 필요한 전시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미술관 운영에 따르는 인건비와 경상비를 마련하는 일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체로 전시예산은 공적자금에 의존하게 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지자체, 문화재단 등에 공공기금을 신청하고 떨어지면 전시는 없어지고 다행히 선정되면 지원받은 예산을 바탕으로 미술관 자체 예산을 보태 원래 계획대로 전시가 진행된다. 그런데 사립미술관에서 개인전으로 기금을 신청하면 대부분 탈락한다. 작가들이 개인전 기금을 직접 신청하는 경우에도 전시 장소에 미술관 이름을 적으면 떨어진다. 반면 대관화랑이나 상업화랑 이름을 적으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사립미술관에서는 개인전보다 상대적으로 심사에서 유리한 주제기획전으로 공공기금을 신청한다. 공적자금을 받지 못하면 100% 미술관 자체 예산으로 개인전을 개최해야만 하는 구조다. 다음으로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리는 기간에는 주제기획전에 비해 관객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작가나 흥행 요소가 높은 스타작가를 제외한 국내 작가의 경우, 개막식 날만 관객이 북적거릴 뿐, 나머지 전시 기간 동안에는 전시장에 정적만이 흐른다. 입장료가 주요 수입원인 사립미술관에서 전시예산이 수 천 만원이 들어가는데도 수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개인전을 무조건 반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작가에게 미술관 개인전은 매우 중요하다. 작품판매가 목적인 화랑과는 달리 상업성에서 자유로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 작가는 예술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때문이다. 미술관 개인전은 작가의 경력관리에도 도움을 준다. 작품성을 검증받았다는 일종의 보증서로도 활용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중소 화랑 및 비영리전시공간에 작가를 발굴할 기회를 제공하는 ‘예비 전속작가제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이 사립미술관으로도 확대되어 미술관 개인전을 희망하는 작가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