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거대 정치ㆍ경제 공동체 ‘유럽연합’(EU)이라는 댐을 일순간에 무너뜨린 영국의 EU 탈퇴. 한국 나이로 41세의 젊은 나이에 프랑스의 정치사를 새로 쓰고, 한켠으로는 ‘제왕적 리더십’ 이라는 구설수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유령처럼 유럽을 배회하고 있는 극우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유럽은 좀체 뉴스의 중심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끈임없이 뉴스의 생산지가 되며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런 유럽을 바라보는 잣대가 있을까?

언어에서 축구까지…유럽 문명의 숲으로 떠나는 지적여행 ‘문명의 그물’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서 유럽 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신간 ‘문명의 그물’에서 12가지 키워드로 유럽 문명을 분석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물’ 이라는 장치를 통해 유럽 문명을 톺아보는데, 하나의 그물을 전제하기보다는 다양한 영역의 다수의 그물이 서로 겹치면서 연결돼 있는 문명을 그린다. 느슨하지만 유연하게 연결된 ‘그물’인 셈이다.

저자는 우선 언어나 종교 등 문화의 핵심부터 시작해 미술, 음악, 학문 등으로 확장해 문명의 다양한 그물을 묘사한다. 이어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왕족 및 귀족, 전쟁, 도시 등을 살펴본 뒤 경제적 자본과 정치적 평등의 그물을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해외 진출과 세계 지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교통을 살펴보고, 이 모든 그물의 종합판으로서 근대에 생겨난 축구의 그물로 파노라마 같은 유럽 문명 여행을 마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그물의 복합체인 유럽 문명의 중요한 특징으로 다양성을 꼽는다. 다양한 중심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고 교류하고 모방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EU에 대해서도 “민주주의라는 구조 동질성을 바탕으로 정치제도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운동”이라며 “다양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실험이 가능했고, 우수한 제도나 요소가 자연스럽게 주변 지역으로 확산했다”고 설명한다. 가령 언어만 하더라도 유럽연합 공식 언어는 24개다. 회원국이 쓰는 언어는 사용 인구가 적더라도 모두 공식 언어로 인정한다. 이는 효율성보다는 다양성을 강조한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