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과 공무원표 혁신

국립현대미술관이 2019년 개관 50주년을 앞두고 중기 혁신계획을 지난 26일 발표했다.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지만 요약하면 ‘미술관 정상화’다. 전시를 오픈하기 앞서 3~5년전에 기획하고 연구해 깊이있는 전시를 만들고, 도록과 출판까지 연계해 세계미술의 세계적 유통도 챙기겠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민원성’, ‘벼락치기’ 전시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겠다는 계획이다. 미술관이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자립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법인화 논의 중단에 따른 혁신안 발표자리임에도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재정계획, 인사와 직제개편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2018년 예산 724억원, 학예인력 135명의 거대 미술관이 내세운 중기계획 무엇을 보아도 ‘혁신’으로 읽힐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기본도 안돼있었다는 뜻에 다름없다.

문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적받는 부분이 지금의 혁신안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법인화 검토를 중단하면서 미술계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쇄신 계획을 수립ㆍ시행하라는 문체부의 요구가 있어서” 이같은 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후임 관장이 누가되든 방향성은 지켜져야한다고 했다.

미술계의 요구는 미술관 정상화에 그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특유의 ‘공무원스러움’에 있다. 결정을 내려도 실행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는 점, 전시는 많지만 ‘늘 그 밥에 그 나물’인 전시들, 공들여 기획한 전시지만 세계 어느 곳에도 수출할 수 없는 내수용 전시들, 한국현대미술의 국제화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세계 미술흐름에서 이렇다 할 이슈도 만들지 못하는 점 등이 꼽힌다.

심지어 영문도록도 제대로 없었던 건 그나마 외국인 관장이 취임하면서 바뀐 부분이다. 곧 12월에 청주 수장고가 오픈하면 규모상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 되지만, 그에 걸맞는 영향력을 갖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2년 반 전, 외국인을 국립 미술관에서 관장으로 선임하면서 기대했던 부분은 바로 이런 고질적 문제의 해결이었다. 그러나 마리관장도 자신이 추진했던 전시가 좌초되는 과정을 겪으며 “국립 조직이라 예산과 행정적 부분에서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관장이 아니다. 또 법인화가 되느냐 국립미술관으로 남느냐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마리 관장은 얼굴일 뿐이고, 내부 권력이 따로 있어서 그 권력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내부의 치열한 자기반성과 대대적 수술이 있지 않고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혁신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