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한국의 후기 단색화’전 근대화 몸으로 체험한 5060 작가들 수양을 넘어 예술표현의 수단으로 독자적 재료·매체실험으로 새 지평 애드 라인하트의 ‘블랙 페인팅’과 김기린의 ‘인사이드, 아웃사이드(Inside, Outside)’의 차이를 알아보기 시작한 건 불과 20년이 되지 않았다. 두 작가 모두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를 추구하기에, 이 단어가 생기기 전엔 “똑같다” “따라한 것 아니냐”는 괄시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단색화’는 더이상 서양 모노크롬의 아류로 평가되지 않는다. 한국만의 독특한 미술사조로 자리잡았다. 특히 2014년부터 3년여 간 국내외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K아트’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회화=단색화’로 세계미술시장에 알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자 다음 질문이 나왔다. “해외 컬렉터들이 연락이 옵니다. ‘단색화가 아니라도 좋다. 단색화가를 이을 다음 한국 작가는 누구냐’고요”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
단색화 이후를 전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리안갤러리 서울은 지난 5일부터 ‘한국의 후기 단색화’전을 개최한다. 현재 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시대 단색화 작가들을 조망하는 전시다. 리안갤러리는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출생인 전기 단색화 작가들 이후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후기 단색화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시 기획자는 미술평론가 윤진섭씨다. 지난 2000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 영문판 도록에 ‘단색화(Dansaekhwa)’라는 단어를 처음 쓴 장본인이기도 하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전시장에서 만난 윤 평론가는 “서양의 모노크롬과 한국의 단색화는 그 맥락이 전혀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알리고 밝히고 이론화하자 이제야 ‘단색화’가 평가를 받고 있다. 근 17년이 걸린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국내외 컬렉터와 미술시장에서 단색화 열풍이 주춤하다. 시장에서 선호하는 1세대 작가들의 1970~80년대 작품의 물량이 고갈되니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나 싶다. 또 상업적 붐에 걸맞는 담론도 부재한 것도 사실이다”고 지적하며 “처음 단색화를 이야기한 사람으로 책임감도 있고, 후기 단색화는 전기 단색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전기 단색화의 퇴조를 만회할 만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선보이는 후기 단색화 작가들은 현재 50~60대 작가들이다.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에 해당하는 세대로, 한국의 근대화(1960년 이후)의 과정을 몸으로 체험했다. 전기 작가와 달리 유교적 생활윤리보다 합리주의적 사고에 익숙하다. 일본어는 구사하지 못하고 영어에 익숙하며, 후기 산업사회에 대학을 다녔다. 전기 단색화 작가들이 타임지, 라이프지를 통해 서구 모더니즘을 받아들였다면 후기 단색화 세대는 근대성이 우리 사회에 실재했던 사회에서 자라 이를 몸소 체험했다. 작품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전기 단색화 작가들이 수양이나 수신의 과정 혹은 수단으로 작업을 했다면 후기 작가들은 예술을 의식의 표현수단으로 간주한다. 특히 독자적 재료와 매체 실험으로 단색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측면이 집중 부각되고 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김근태, 김이수, 김춘수, 김택상, 남춘모, 법관, 이배, 이진우, 장승택, 전영희, 천광엽 등 11명 작가다. 윤 평론가는 “1970년대부터 단색조 작업을 꾸준히 해온 이들 중에서 독창성 있는 작업 세계를 가진 작가들을 이번 전시의 주인공으로 택했다”고 선정 기준을 밝혔다.
선정된 작가들의 작업은 단색화 맥락을 이어가면서 재료와 매체의 실험을 이어간다. 김택상 작가는 묽게 푼 아크릴 물감으로 화면을 채우고 말리고를 반복해 깊은 색감을 만들어낸다. 김춘수 작가는 물감이 묻은 손으로 캔버스 전체를 누비며 몸의 역동성으로 화면을 채운다. 김근태 작가는 형태가 없는 화면의 구축을 통해 어떤 정신세계를 드러내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이배 작가는 나무를 태워 얻은 숯과 파라핀을 섞어 마치 상감을 하듯 새겨넣거나 숯 자체를 오브제 삼은 설치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2월 24일까지. 리안갤러리 대구에서도 3월 8일부터 4월 14일까지 같은 전시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vic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