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온라인에선 ‘짝퉁’ 어보 환수 논란에 시끄러웠다.
2년 전 미국에서 환수한 덕종 어보<사진>가 알려진 것 처럼 성종이 죽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1471년 제작한 원본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뉴스는 삽시간에 퍼졌고, 친일파에 의해 제작된 ‘모조품’이니 고궁박물관 전시를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더불어 재제작품임을 알면서도 숨기려했다는 질타도 쏟아졌다. 환수 이후 조사를 통해 ‘신품’임을 알았지만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김연수 고궁박물관 관장은 “환수 직후 원품임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불찰”이라면서도 “지난달 미국과 수사 공조로 의미 있게 들어온 문정왕후어보, 현종어보와 함께 일반에 공개할 때 다 같이 얘기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한 것이지 은폐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전시는 현재도 진행중이다.
정말 덕종어보는 ‘짝퉁’인 걸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덕종어보처럼 재제작된 어보는 총 28개에 달한다. 이번에 미국에서 돌려받은 문정왕후어보도 처음에 만들어진 어보가 아니라 다시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명종실록 16권에 따르면 “명종 9년 6월 7일, 성렬 인명 대왕 대비와 공의왕 대비의 보ㆍ옥책ㆍ교명ㆍ인을 완성하여 바치다”는 문구가 있다. “전년 가을 경복궁 화재에 모두 타버려 다시 만들 것을 명하였는데, 이때 완성했다”고 이유까지 적시했다. 이처럼 궁궐이 불타 소실됐거나, 도난당했거나 혹은 죽은 선조를 기리기 위해 후대에 다시 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보 자체가 왕비 혹은 세자, 세자비가 책봉될 때 제작하는 일종의 의례용 도장이었기에 한 사람이 여러개의 어보를 하사받기도 했다. 또한 존호(尊號ㆍ신료들이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올리는 호칭), 시호(諡號ㆍ후대 왕이 선대 왕의 일생을 평가하고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짓는 호칭)를 올릴 때 다시 만들고 봉안(奉安)의식을 행해 공식 어보로 인정하는 건 조선에선 흔한 일이었다. 훗날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덕종어보를 ‘짝퉁’이라고 한다면 이처럼 재제작된 어보는 모두 ‘짝퉁’이 되는 오류에 빠진다.
다만 덕종어보의 경우는 재제작의 시기가 일제강점기인 1924년으로 정통성에 대한 의문은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한일합병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한 1910년을 기준으로 이후의 유물에 대해선 문화재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순종의 명으로 ‘이왕직(李王職)’에선 어보를 다시 만들었지만, 이왕직의 장관은 친일파 민영기, 예식과장은 이완용의 차남인 이항구였다. 또한 실제 어보를 제작한 조선미술품제작소는 일본인의 취향을 의식한 중국 고동기 모양의 기형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등 일제의 영향을 받았기에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실정이다. 덕종어보는 이같은 이유로 지난 2월 말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 문화재 지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말 ‘짝퉁’은 따로 있다. 몇 해전 모 옥션에 올라왔던 ‘정조 어보’ 같은 경우다. 원품이 고궁박물관에 있는데도, 왕의 어보라며 출품됐다. 대부분 중국에서 제작된 가짜인데도 고미술품 시장에서 유통되는 경우가 간간히 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이라고 무조건 ‘가품’으로 볼 순 없다. 문화재적 가치가 다를 뿐”이라고 했다.
고궁박물관 전시장의 덕종어보 코너엔 ‘1924년 도난당한 후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새로 제작한 것’이라며 ‘일제 강점기에 제작됐으나, 왕실의 전통을 유지한 공예품으로 손색이 없고, 현존하는 덕종어보로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 붙었다. 당시 신문기사도 함께 전시됐다. ‘순종이 어보 분실에 대해 염려해 경찰서장을 불러 조사를 촉구’(동아일보, 1924년4월12일)했으며 ‘어보를 재제작해 정식으로 종묘에 위안제를 지내고 봉안’(매일신보, 5월2일)했다는 것도 명시했다.
이제 남은건 ‘아픈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아무리 지워버리고 싶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일제 강점기는 우리의 역사다. 부정만이 역사적 전통성을 지키는 길일까. 최근 우리사회를 뒤덮은 최대 이슈인 ‘적폐 청산’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필요하다. ‘적폐’는 협소한 시각에서 온다. ‘나만 옳고, 나와 다른 시각은 다 그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한발짝의 ‘진보’도 이룰 수 없다. 균형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