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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니맨 시즌2, 정면돌파] ④ 삶의 밑바닥에서 쓴 나의 성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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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드라마에서 때린 ‘조연 적시타’는 실력보다는 행운에 가까웠다. 사진은 극중 모습.


다시 밑바닥으로

연기 생초보가 데뷔작에서 조연을 맡았다? 이건 배트를 처음 잡은 사람이 2루타를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실력이 아니라 운과 우연인 것이다. 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싶었다. 공개오디션을 100번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매니지먼트사의 생각은 달랐다. 이상이 너무 높았다. 내가 밑바닥으로 돌아가는 걸 원치 않았다. 제작자나 연예계 사람과의 약속을 주선했다. 연기가 아닌 연줄로 배역을 따내려는 꼼수만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지만 내게 들어오는 배역은 없었다. 공개오디션에서도 쓴잔만 마셨다. 수입 없이 사람만 만나러 다니다 보니 통장잔고는 또 다시 텅텅 비었다. 원점으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역시 내 인생은 누군가에게 맡기기보단 내 스스로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매니지먼트사에 전화해 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무엇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근처 편의점에 앉아 나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너는 돈도 친구도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세상에 자신 있게 나온 이유가 뭐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 21년간 야구에 올인 했던 인생. 그 인생이 나를 지탱해주고 당당하게 만들어 주지.’

‘그렇게 네 이전 인생이 남에게 보여줄 만큼 당당하냐? 그럼 책이라도 써서 알려봐. 성공한 사람들은 다 책을 쓰잖아. 남들은 네가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넌 성공했다고 자부하잖아. 남들에게 증명해봐’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닌 나 스스로를 증명하는 그런 책. 성공스토리를 밑바닥에 있는 사람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최초의 책. 내가 책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앞의 인생을 도박이나 범죄 등으로 나쁘게 보낸 게 아니었다.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1년간 전력질주를 한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재산을 탕진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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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과거로 돌려놓았던 '타임머신'. 지금 보니 이유 모를 눈물 자국도 남아 있다.


눈물로 걸어간 기억속의 하얀 눈밭


2010년 3월 그렇게 책을 내기로 결정했다. 뭐든 마감기한부터 정하고 일을 계획하는 성격이라 6개월이란 마감기한부터 정한 뒤 책 만드는 법을 알아봤다. 그런데 내가 “책은 어떻게 만드냐”라고 묻는 사람들마다 ‘네가? 네가 뭔데 책을 내?’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사실 그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스토리를 가진 자가 책을 내는 것이지, 껍데기를 갖춘 사람이 책을 내는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반응도 안 좋았고, 글을 써줄 작가를 찾기도 힘들었다. 작가에게 지불해야한 돈 문제도 있었다. 6달 중 1달을 허비했다.

하는 수 없어 직접 펜을 잡았다. 직접 책을 쓰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 구할 작가의 원활한 작업을 위한 예비작업이었다. 출판사를 찾아다니던 도중 지하철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들었다. 수첩을 통해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서 뭐가 후드득 떨어졌다.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마음을 가라앉히자 내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알 것 같았다.

수첩을 펴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걷는 듯했다. 난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항상 앞만 보고 갔다. 그렇게 예전 일은 까맣게 잊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 선명히 떠올랐다. 오히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기억 속 하얀 눈밭을 어지럽히지 않았기 때문일까. 추억에 젖은 내 펜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어느새 작은 수첩은 추억의 조각들로 가득 찼다. 대필 작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후 수시로 현재와 과거를 오갔다. 출판사나 작가와 미팅을 할 때는 현재에 충실했다. 틈날 때마다 펜을 잡고 공책을 펴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1달 만에 저니맨 이야기를 완결 지었다. 눈물 섞인 수첩을 포함해 큰 공책 3권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분량도 많았다. 며칠 뒤 후배를 불러 컴퓨터로 옮기고 보니 A4용지 75장 분량이 나왔다. 평생 글이라고는 일기 몇 줄 밖에 적어본 적 없던 내가 이렇게 많은 글을 쓰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정리=차원석 기자 @Notimeover]

* 최익성
이름보다 ‘저니맨’이란 호칭으로 더 유명한 남자. 힘들고 외로웠던 저니맨 인생을 거름삼아 두 번째 인생을 ‘정면돌파’ 중이다. 현재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대표를 지내며 후진양성에 힘 쏟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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