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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대리인] ① “감정을 대신해 드립니다” 감정 외주 시대
직접적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쁘다”와 같은 말 대신 방방 뛰는 이모티콘으로 감정표현을 대신하고, 직접 나서는 대신 액자형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대리만족 한다. 심지어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대신 찌질한 페이지’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 등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직접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짚어보고, 감정대리가 어떤 현상을 야기할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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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카카오톡 메신저 캡처)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직장인 김민주(29.서울) 씨는 연인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면 이모티콘을 빼놓지 않는다. 대화의 반 이상이 이모티콘일 정도다. 김 씨는 “남자친구와 대화 반 이상이 이모티콘이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을 할 수 있는 이모티콘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내 감정을 더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때론 열 마디보다 이모티콘 하나로 분위기가 좋아질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모티콘 사용처럼 감정을 대리해 표현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올해 트렌드 단어로 ‘감정대리인’이 화두에 올랐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집필한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는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것을 감정대리인이라고 정의했다. 감정대리인은 감정을 대리해주는 사람뿐 아니라 상품, 서비스들을 총체적으로 아우른다.

현대인의 일상에선 이 같은 감정대리인 현상이 곳곳에 묻어난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등 메신저에서 자주 쓰는 이모티콘 사용도 감정대리인의 대표적 예라 볼 수 있다. 현재 카카오톡에선 매월 약 20억 건의 이모티콘이 사용되는 것으로 통계됐다. 일상 대화 속 이모티콘 사용이 얼마나 잦은 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수치다. 연인과의 대화뿐 아니라 직장 동료, 가족, 친구 등과의 메신저 대화에서도 이모티콘은 이젠 빼놓을 수 없는 ‘필수템’이 됐다.

이처럼 감정대리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디지털 세대에 이모티콘은 익숙한 표현이다. 일종의 아바타 현상이다. 지금의 디지털 세대에서는 자신이 직접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많다. 반면 감정대리인처럼 대리인을 내세우면 직접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근래 관계 맺기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요샌 대인관계 통해 관계를 맺는다보기보단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한다. 직접적 관계를 피하려는 경향이 많다. 디지털 사회에서 관계나 표현 창구가 다양화 돼 가는 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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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페이스북 대신 찌질한 페이지 캡처)



SNS에서도 감정대리인 현상이 두드러진다. 페이스북 등에서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 ‘대신 상사 욕해주는 페이지’ ‘대신 찌질한 페이지’ 등이 유행 중이다. 적게는 수천명부터 많게는 만명 단위까지 팔로우수가 증가 추세다.

‘대신 찌질한 페이지’를 살펴보면 불평 섞인 일상 사연이 올라온다. 자칫 지인에게 직접말하기엔 찌질할 수 있는 푸념들을 익명을 통해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직장인 A씨(36.인천)도 ‘대신 상사 욕해주는 페이지’ 이용자다. A씨는 “인간관계가 얕아 상사를 욕할 수 있는 친구도 없다. 그때 ‘대신 상사 욕해주는 페이지’를 찾았다. 익명이기 때문에 나에게 해가 될 일도 전혀 없고, 내 사연뿐 아니라 공감되는 다른 게시자의 사연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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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감정대리인 의존도 높아질 가능성 커, 감정대리 사업도 활성화

감정대리인과 관련된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의존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영국의 한 번역 회사에서 ‘이모티콘 번역가’ 구인광고를 냈다. ‘이모티콘 번역가’는 이모티콘이 나라나 문화별, 연령세대별로 어떻게 해석되는 지 연구하는 것이 주 업무다. 당시 우스갯소리처럼 들렸던 이 구인광고는 최근 들어 트렌드 직업 분야로 떠오르며 전망이 밝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감정대리와 같은 언택트 기술에 의존하다보면 감정 근육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감정 큐레이션 사업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페피팔’이라는 감정 교육 게임이 출시되기도 했다. 특히 직접 감정을 입력하지 않아도 먼저 감정을 분석해 그에 맞는 해법을 제공하는 AI 큐레이션 서비스가 진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동귀 교수는 “감정대리인은 비대면 관계가 발현되는 거로 본다. 다만 밀레니엄 세대(M세대)와 Z세대가 받아들이는 차이가 조금 다를 수 있다. Z세대의 경우는 디지털만 경험했다. 완전 디지털 세대들은 오히려 아날로그에 관여한다. M세대는 효율성이라든지 직접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크다. 특징이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다. 각 세대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를 수 있지만 ‘언택트 인 필링스’(Untact in feelings)가 심화돼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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