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조승우
JTBC '라이프' 조승우 캐릭터 포스터(사진=씨그널 엔터테인먼트 그룹, AM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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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그널 엔터테인먼트 그룹, AM스튜디오)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요즘 배우 조승우를 보고 있자면 6년 전 드라마 데뷔작 ‘마의’로 MBC 연기대상의 영광을 안고도 “기쁘지만 빨리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너스레 떨던 조승우와 같은 인물이 맞는지 의아해진다. 지난해 tvN ‘비밀의 숲’으로 이수연 작가를 처음 만난 조승우는 이제 “‘비밀의 숲’이 시즌5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할 만큼 드라마판에 애정이 생긴 듯 보인다. 정확히는 이수연 작가의 드라마에 푹 빠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그런 이유로 조승우는 이수연 작가의 두 번째 드라마 JTBC ‘라이프’에도 망설임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대학병원 내부에 복잡하게 얽힌 권력과 이해관계를 담는 ‘라이프’에서 조승우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뽐낸다. 이는 첫 방송부터 증명됐다. 약 65분의 방송 분량 중 조승우가 모습을 드러낸 장면은 고작 5분 가량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의사들을 향해 선전포고하는 조승우의 모습은 앞서 다소 지루하게 흘렀던 1회 전체의 분위기를 뒤집었다. 아울러 전작 ‘비밀의 숲’에서 맡았던 감정 없는 검사 황시목의 잔상도 깨끗이 지웠다.조승우가 맡은 역할은 병원의 총괄사장 구승효다. “여기 병원 사람들 전부 합병을 통해 화정 그룹 직원이 됐다. 이제 일을 해야 한다. 직원들 하는 일이 뭐냐. 회사에 이익주고 돈 받는 것”이라며 의사에게 의약품 영업을 시키는 승효는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철저히 따르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사사건건 의사들과 부딪힌다. 조승우는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승효를 “극혐인 캐릭터”라고 표현했다.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하다”며 “재수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병원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며 스스로 변화할 것”이라는 여지를 남겼다.

과연 그의 분석력은 정확했다. ‘라이프’가 현재 6회까지 방영된 가운데, 승효는 의학 전공자가 아니라 전문 경영인으로 병원 사장에 올라 의사들 사이에 공공의 적(敵)이 됐다. 의사들이 윤리적인 가치관을 앞세워 병원의 운영방침에 반발하면 승효는 돈의 논리로 반박한다. 곱씹으면 궤변이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의사도, TV 밖 시청자들도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러니 그를 단순히 ‘악역’으로 규정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다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여준다. 소아병동에서 우는 아이를 바라보며 흔들리던 승효의 눈빛,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나도 어릴 때 아픈적이 있냐”고 묻는 모습은 극혐도 아니고 재수없지도 않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승효의 또 다른 얼굴이다. 특히 유기동물 봉사 현장에서 강아지와 노는 이노을(원진아)를 바라보며 슬쩍 짓는 미소로 은근한 설렘까지 자아냈다.‘라이프’에 조승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수연 작가의 화법은 독특하다. 바꿔 말하면 불친절하다. 이 작가의 드라마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최종 메시지에 도달하기까지 곧은 길을 따라 걷는다.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가 요소들을 넣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전개되기까지 베일에 가려진 정보들이 너무 많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비밀의 숲’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을 붙잡는 건 조승우다. ‘라이프’가 무엇을 말하는 드라마인지 모르겠다는 이들도 일단 조승우의 연기를 보면 감탄한다. 크게 움직이거나 극단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도 화면을 압도하는 것은 조승우가 가진 힘이다.조승우는 2000년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한 이래 주로 영화와 뮤지컬로 관객들을 만났다. 큰 스크린과 넓은 무대는 조승우 특유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분출할 수 있는 장(場)이 됐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드라마 화법을 전혀 따라가지 않고 16회짜리 영화를 만들어 놓은 듯한 ‘라이프’는 조승우가 날개를 펼치기에 제격인 드라마다. 조승우도 ‘비밀의 숲’으로 이수연 작가와 인연을 맺으며 이를 느꼈으리라. 경력 19년 차이지만 드라마 출연작은 ‘라이프’까지 다섯 편에 불과한 조승우. 그러나 ‘비밀의 숲’과 ‘라이프’가 물꼬를 텄다. 앞으로는 안방극장에서도 조승우를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