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많은 분들이 셋이 자주 싸우지 않느냐고 묻는데 우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오히려 오래하면서 대중적 취향들이 닮게 됐죠(이선규)”

지난 1997년 결성된 밴드 자우림(紫雨林)은 국내 밴드계의 상징적 존재다. 1집부터 10집을 발매하는 동안 늘 대중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받았다. 밴드가 마이너 취급을 받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렇기에 밴드를 꿈꾸는 지망생들의 입에선 언제나 자우림을 롤모델로 꼽는 이들로 넘쳐났다. 국내에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밴드를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자우림은 베짱이의 집합소다. 멤버 셋 모두 오랜 팀워크의 비결로 ‘게으름’을 꼽았을 정도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고, 음악에 대한 성급함이 없다. 21년간 이어온 셋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지난해 자우림에겐 멤버 변화가 있었다. 20년을 함께 한 드러머 구태훈이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 것이다. 자우림의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누구보다 우리가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김윤아)”

그리고 마침내 데뷔 초 꿈꾸던 셀프타이틀로 정규 10집을 발매하게 된 자우림. 언제나 그랬듯 시대상을 반영한 이들의 앨범엔 버릴 곡 하나 없다. 10트랙 모두에 상징적 의미를 꾹꾹 눌러 담았다. 자우림의 롱런 비결은 ‘이 시대의 공감’이다. 1997년 발매곡 ‘일탈’이 아직까지 사랑받는 이유다.


▲인터뷰를 즐겨하지 않았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뭔가요?

“몇 년 전에만 해도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어요. 요샌 배우들이 이렇게 인터뷰를 많이 한다고 소속사에서 안심시켜줘서 하게 됐죠(김윤아)”

“지난해 20주년이라 들떴었는데 얼마 전 알고 보니 조용필 선생님이 50주년이더라고요. 그걸 보고 나대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래도 20년 정도 해보니 이제야 좀 음악을 알 것 같아요(이선규)”

▲정규 10집에다가 셀프타이틀이에요. 선정 배경이 따로 있나요?

“보통 셀프타이틀을 1집에서 사용하잖아요. 우리도 늘 셀프타이틀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창피함 때문에 하지 못했어요. 이번에도 셀프타이틀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들 흔쾌히 ‘해도 되겠다’는 반응이 나왔어요. 그래서 하게 됐죠(이선규)”

▲정규 10집 ‘자우림’은 어떤 앨범인가요?

“자우림 앨범을 작업할 때 공통적인 규칙을 둬요. 개인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셋 모두가 공유할 수 있고 납득이 되는 걸로 하죠. 또 노래의 화자가 남녀에 편중되지 않고, 연령은 미상이지만 마음속에 청춘이 있어야 해요. 이번에도 앨범 주인공이 그런 사람이에요. 곡 작업을 하면서 이번 앨범은 꼭 단편 소설집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명의 주인공이 흐름에 따라 존재하면서 곡마다의 개성이 달라요. 1,2,3집은 희한한 앨범이었어요. 4집부터 8집까지는 밴드다운 즉흥적이고 에너지 있는 사운드에 집착했죠. 9집은 밴드다운 시너지가 완성형에 가까웠고요. 10집에선 9집의 완성형 밴드사운드에 미래지향적인 걸 추가해서 확장시켰어요. 우리만의 생각이지만 ‘국내에서 이런 사운드는 자우림 밖에 못 내지 않나’라고 생각해요. 곡들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도 우리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해요. 10집 ‘자우림’은 자우림 그 자체인 앨범이에요(김윤아)”

▲완성형 사운드라고 설명했는데 짚고 들을 만 한 포인트가 있나요?

“어떻게 보면 사운드는 굉장히 주관적인 거예요. 어떤 분들은 여백이 많은 소리를 좋은 사운드라고 하고 어떤 분은 꽉 찬 큰 소리를 좋아하죠. 예전엔 라이브용 앨범이었다면 9집부터는 확실히 스튜디오앨범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비틀즈는 철저히 스튜디오앨범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뒤로 진짜로 그걸 실행했죠. 하지만 우리는 라이브도 할 거예요. 음악의 질을 떠나서 우리만의 사운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이선규)”

▲5년 만에 정규앨범을 발매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나요?

“5년 만에 앨범이 나온 건 이전 회사와 계약이 종료된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새 회사로 옮기게 됐고, 내 솔로 앨범도 발매했죠. 그러면서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사실 숫자로는 오래된 것 같은데 체감상은 재작년에 나온 것 같아요(김윤아)”

▲10집에 김윤아가 작업한 곡들이 제일 많아요. 곡 선정 기준이 뭔가요?

“게으른 애들 중에 내가 가장 부지런하거든요(웃음)(김윤아)”

“작업을 하다보면 끝까지 못갈 것 같은 느낌의 곡이 있어요. 일단 우리 셋이 먼저 공감을 해야 하죠. 그 기준에 못 미치면 탈락이에요. 한 사람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이선규)”

▲10집 ‘자우림’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나요?

“우리가 공통적으로 영감을 받는 부분이 뉴스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모습이 아닌 가 해요. 눈치 챘겠지만 굳이 밴드이기 때문에 사회 저항 의식이 가져야 한다는 멤버는 없어요. 살아 있는 동안 사람들 간에 같은 생각을 지니는 부분이 있잖아요. 자신뿐 아니라 친구나 가족 모두 꿈이나 희망, 절망이 존재해요.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그건 데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갖고 있는 생각이에요(김윤아)”

▲자우림이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신예 밴드 중 프론트우먼이 나오면 매스컴에서 ‘제2의 자우림’이라는 수식어를 자주 붙였어요. 결국 그게 그분들한텐 독이 됐지만 우리한텐 약이 돼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이선규)”

“그것 뿐 아니라 밴드 자체가 오래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멤버들 서로가 감사한 지점이 있죠. 누군가 더 많은 명예와 금전을 원했다면 지금까지 유지가 안됐을 거예요. 다들 적당히 게으르고 친구 같은 이해관계가 있죠. 사실 우리끼리만 좋고 재밌어서 음악을 하면 팀이 오래 지속될 수 없잖아요. 음악세계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다는 건 우리의 음악을 원하고 이해하는 청자가 있다는 뜻이죠. 그런 면에서 해가 갈수록 감사해요(김윤아)”

▲데뷔 시절 20년 후인 지금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나요?

“데뷔 때는 우리 이름으로 앨범을 한 장만 내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가 다였죠. 데모 테이프 만들어서 기획사에 가져다주면 되돌려 받고 그랬으니까요. 데뷔 할 땐 아무 그림도 안 그렸지만,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완성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죠. 살아만 있으면 됐지 했어요(김진만)”

“데뷔 초 때 20주년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그저 20년 뒤에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 했죠(이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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