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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악산 정상에 웬 흰색 축구공?
한때 이런 우스갯소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63빌딩에선 마징가제트가 나오고 국회 의사당 지붕에선 로보트 태권브이가 출동한다는 얘기다. 독특한 형태의 건물에 대한 호기심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버무려진 결과다.

관악산에도 이런 의문을 갖게 하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관악산 꼭대기에 설치된 ‘흰색 축구공’ 조형물이 바로 그것이다. 흰색 공모양으로, 축구공 같이 줄이 쳐 있는 게 다분히 흰색 축구공을 연상케한다. 흰색 축구공이 이곳에 세워진 지 40년이 넘었지만 이곳을 오르는 등산객과 관악산을 매일 마주하는 서울대생 절반 이상이 이 조형물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혹시 로보트 태권브이가 취미로 가지고 노는 축구공은 아닐런지. 흰색 축구공의 정체가 몹시 궁금하다.


▶흰 축구공의 정체는 ‘기상관측 레이더’= 흰 축구공은 정체는 대기현상을 관측하는 기상장비. 주업무는 ‘강수의 위치와 강도’ 관측이다. 축구공처럼 보이는 원형 돔의 이름은 ‘레이돔’, ‘레이더 돔(radar dome)’의 합성어다.

이 ‘레이돔’ 안에는 강수의 위치와 강도를 관측하는 기상 레이더 안테나가 설치돼 있다. 이 안테나는 8.5m 접시형으로 360도 수평 회전을 하며 전파를 발사해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해 강수정보를 얻는다. 쉽게 말해 비오는 날이면 TV 뉴스 일기예보에서 나오는 레이더 영상이 바로 이 안테나가 수집한 것이다. 수집된 영상은 품질관리과정을 거쳐 레이더별 강수영상과 더불어, 한반도 전체를 표시하는 합성영상과 함께 분석돼 3시간 이내의 강수량 예측 정보를 생산하는 등 응용자료로 산출된다. 최종적으로 생산된 레이더 영상자료는 기상청 홈페이지와 뉴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제공되고 실황예보, 수문기상, 응용기상, 군사작전, 연구개발 등 관련 유관기관에도 맞춤형 서비스로 활용된다. 최근엔 10분 단위의 레이더 영상을 스마트폰 날씨 웹과 모바일 앱을 통해서도 볼수 있다. 


▶ ‘흰색’ ‘원형’ ‘줄’ ‘높은 곳’ 고수하는 이유 있다= ‘기상관측 레이더’가 흰 축구공을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원형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레이돔’ 안의 안테나가 360도 회전 하기 때문이다. 외부충격에서 안테나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원형의 경우 강풍 등 외부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한쪽에 충격이 몰리지 않아 충격을 분산,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이로 인해 ‘레이돔’은 90m/초(시속 324㎞)에도 견딜 수 있다. 흰색을 고집하는 이유도 있다. 흰색이 자외선을 차단해 급격한 온도변화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공처럼 줄이 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도 ‘레이돔’이 여러 패널을 이어 붙인 구조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또 ‘기상관측 레이더’는 건물이나 산맥 등에 의해 전파신호가 왜곡되지 않게 하기 위해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자파에 대한 일반사람들의 우려도 ‘기상관측 레이더’를 산 꼭대기에 올려놓은 이유 중 하나다. 


▶흰색 축구공, 전국에 10여개, 원조는 관악산 레이더=산 정상에 설치된 ‘흰색 축구공’은 관악산 외에 전국 10여곳에서도 볼 수 있다. 부산 구덕산, 백령도, 제주 고산, 성산, 강릉 등이 기상청이 설치한 기상레이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국토해양부와 국방부에서도 경북 청도군 비슬산 강수레이더 관측소 등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관악산 기상관측레이더가 특별한 이유는 이곳이 국내 기상관측레이더의 원조라는 점 때문. 관악산 기상관측 레이더는 1969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레이더로 두 차례 노후 레이더 교체를 거쳐 40년 넘게 묵묵히 기상관측을 수행하고 있다.

관악산을 국내 최초의 기상관측레이더 설치 장소로 선택한 건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집중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관악산 기상관측 레이더는 보통 반경 240㎞를 관측하는데, 최고 480㎞까지 관측이 가능해 부산의 기상현상까지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바위가 많아 오르기 힘들다고 했던가. 관악산 역시 바위가 많아 장비를 운반할 때 직원들이 애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수년째 이곳에 근무한 직원들도 비가 많이 내리거나 안개가 끼면 산을 오르다 길을 잃기도 한단다. 여름철에는 산꼭대기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기상청은 국민들에게 편익을 제공하고 기상과학 업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지난 2009년 6월 23일 이 곳을 일반인들에게 오픈했다. 오픈 1년 5개월만인 지난해 11월엔 방문객이 10만명을 돌파했다. 


▶‘원조’는 ‘7월 폭우’에도 특별했다=사흘간 서울에 400㎜가 넘는 비를 뿌렸던 지난 7월의 폭우에도 관악산 기상관측 레이더는 맏형 역할을 충실히 했다. 당시 서울에서 특히 비가 많이 내린 지역은 관악구, 강남구 ,서초구 등 3개구. 이중 관악구는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지역. 당시 관악 기상관측 레이더는 폭우가 시작됐던 7월 27일 오전 7시 서울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매우 강한 강수대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관측했다. 또 이 비구름의 폭이 약 5㎞ 규모의 띠 모양을 유지하면서 시간에 따라 경기만에서 서울의 남부지역으로 이동하는 경향도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다른 지역의 레이더 영상보다 지리적 위치상 서울 지역을 더 잘 관측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관악산 기상관측 레이더에 의한 예보 분석 자료는 기상청 예보관에게 실시간 제공돼 위험기상 현상을 조기에 탐지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슈퍼컴퓨터가 있으니 기상관측레이더는 필요 없다고?=지난 2000년 기상청이 1초에 수천개의 정보를 처리하는 슈퍼컴퓨터(수치예보 모델)를 도입했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의 오보는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슈퍼컴퓨터 2호(2005년), 3호(2011년)를 도입해도 예보는 빗나갔다. 기상청 측은 “예보는 가장 높은 확률, 즉 하나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미래의 일을 100% 정확하게 예측하기엔 현 과학기술로선 불가능하다”며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슈퍼컴퓨터 뿐만 아니라 양질의 관측자료, 예보관의 역량 등 3가지 조건이 모두 향상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슈퍼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해주는 해결사라면 기상관측 레이더는 해결사가 처리해야 할 자료인 셈이다. 자료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해결사도 무용지물인 건 당연지사. 하지만 최근 기습 국지성 호우 등 예상 못한 기상현상에 의한 재해가 늘어나면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보다 조밀하고 정확한 실황자료가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황혜진기자@hhj6386> 
/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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