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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교수는 약탈당한 여가계급”
기존 가치관 즐거움 추구에 치중

소비보다 존재 확인하는 휴가가 필요

비판적인 문화이론가로, 여가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크리스 로젝 영국 브루넬대 교수가 지난 13일 한국을 찾았다. 세 번째로 출판된 그의 저서 ‘여가와 문화’를 홍보하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레저경영전문대학원에서 서머스쿨 강의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유, 해방,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즐거움에 대한 추구로 정의하던 기존의 여가관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저항과 투쟁이기도 하다는 점을 논파함으로써 여가학의 지평을 확대했다.

로젝은 “ ‘10세기 카페’라는 곳은 커피를 마시는 휴식 공간이지만 문학을 하는 곳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열기도 카페에서 시작됐다”면서 “한국도 무교동 커피숍 ‘쎄시봉’이 한국 대중음악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곳이지만, 대학로의 커피숍 ‘학림’은 민주화의 산실이기도 했다. 이처럼 여가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가벼우면서도 무겁다”고 말한다.

폭주족에게 집단 폭주(대폭)는 스트레스 해소의 여가활동이지만 경찰은 범죄이자 위반행동이라며 단속한다. 그래서 로젝은 여가를 자유, 해방, 삶의 질 향상 등 긍정 일색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폭주족이나 카페의 경우처럼 위반의 동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젝은 “이와는 반대로 야만적이고 유독한 여가를 병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려서도 안 된다. 여가 이야기의 단지 절반밖에 말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의 행동을 병리적으로만 보지 말고 진지하게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고 말한다. 그래서 여가학은 계급의 시각이 아닌, 사생활의 문화적 차원에 대한 문제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로젝은 또 여가가 노동이 돼 가는 현실을 지적한다. 로젝은 “사람들은 TV에서 9시뉴스를 보며 앵커의 노련한 진행을 배우고, 영화를 보며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배우의 행동과 옷 입기를 배운다. 여가 장면에서 자유를 누리고 휴식하는 게 아니라 인생수업(informal life coaching)을 받는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소비자에게, 고용주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장이 여가”라고 설명한다.

로젝은 “돈 있는 사람의 여가는 물건 사기, 즉 소비인데 아무리 물건을 사도 살 것은 계속 있고 만족감은 채워지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돈 없는 사람이 공동체에서 인간관계 형성의 기회로 여가를 활용하기가 더 쉽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로젝은 소비(Having)보다 존재(Being)를 확인하는 여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또 기자, 교수, 전자정보통신업ㆍ지식산업 종사자 등이 디지털 이코노미의 도래로 근무시간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일은 점점 많아지는 소위 ‘약탈당한 여가계급’이 돼 가고 있음을 경계했다. ‘자본주의와 여가이론’ ‘포스트모더니즘과 여가’ 등의 저서를 내놓았던 로젝의 여가관은 최근 대한민국에 불어닥치는 여가 열풍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서병기 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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