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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지'의 작가 펄벅을 읽는다
가상 인물 내세워 진면목 생생히 그려내

펄 벅은 반평생을 중국에서 살았다. 푸른 눈과 오똑한 콧날을 가졌지만 중국의 관습과 문화를 뼛속 깊이 체득한다. 중국이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느라 어지러운 시점, 펄은 중국을 코앞에서 지켜보고 몸소 체험한다. 미국에서 남은 반평생을 살았다. 어쩌면 미국에서의 삶은 중국에서의 삶의 연장선이었을지도..... 중국에서의 삶을 거름 삼아 많은 문학작품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중국을 늘 그리워한다. 그 마음을 펜에 실어 줄기 차게 써 내려갔는지도 모른다.


<펄벅을 좋아하나요?>(안치 민 지음, 밀리언하우스.2011)는 <대지>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펄 벅의 굴곡 많은 삶을 그린 소설이다. 지은이 안치 민은 말한다. "펄 벅이라는 여성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 싶었고, 중국인의 관점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우리 중국인의 친구로서의 펄 벅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 펄 벅과 우정을 나누었던 중국인 친구들을 통해 펄 벅의 이야기를 말하기로 했다..... 펄 벅에겐 많은 중국인 친구들이 있었지만 평생을 함께한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소설가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마침내 윌로우라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펄 벅이 아니다. 지은이가 창조한 인물 '윌로우'이다. 죽는 날까지 펄 벅과 끈끈한 우정을 이어간다. 중국인 윌로우의 눈에 비친 펄 벅은 어떤 모습일까?


때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무렵. 넓디 넓은 중국 땅이 개방의 물결로 어수선하다. 시골 마을 전장에서는 한 미국인 선교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열렬히 전한다. 펄의 아버지 압살롬이다. 펄은 어린 시절부터 중국에서 자란다. 중국의 관습과 문화를 자연스레 체득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윌로우. 아버지는 입만 살았지, 정당한 방법으로는 돈 한 푼 벌어온 적이 없다. 사기치고, 도둑질하다가 들통나 두들겨 맞기 일쑤. 집안 환경 탓이었을까. 윌로우는 뛰어다닐 나이가 되자 자연스레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


그러던 어느날 윌로우는 코가 오똑하고 눈동자가 푸른 한 소녀를 만난다. 눈을 반짝이며 잘잘못을 또박또박 지적해대는 펄. 가난의 늪에서 살아남느라 옳고 그름의 개념조차 없던 윌로우에게 펄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윌로우는 펄의 당당한 태도와 예리한 판단력에 마음을 빼앗긴다. 둘은 전장을 맘껏 누비고 다니며 우정을 차곡차곡 쌓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둘은 어엿한 숙녀가 된다. 그사이 펄은 미국에 가서 대학을 다니고 윌로우는 가난한 삶 탓에 마지못한 결혼을 했다가 결국 실패한다. 미국에 갔던 펄이 드디어 전장으로 돌아온다. 약혼자와 함께 와 중국에 정착한다. 하지만 펄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농학자인 로싱은 중국 농업을 개혁하겠다며 중국 각지를 돌아다딘다. 가정은 내팽개친 채. 펄은 딸을 낳지만 얼마 안 되어 정신지체인 것을 알고는 절망한다. 힘든 삶에 버거워 하는 펄. 오로지 글을 쓸 때에만 평안을 느낀다. 펄은 자신이 직접 보고 삶을 나눈 중국 소작농의 삶을 소설에 담는다. 그렇게 완성한 소설이 훗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대지>이다.


윌로우는 상하이에서 공부해서 난징일보에 들어가게 된다. 펄의 글을 읽어주고 글에 대해 펄과 이야기하며 옆에서 힘이 되려 애쓴다. 그러다가 둘은 유명한 시인 쉬즈모와 만난다. 키 크고 잘 생긴 쉬즈모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펄과 쉬즈모는 서로 호감을 느끼지만 펄은 애써 마음을 감춘다. 펄과 로싱의 결혼생활은 이미 파탄 일보 직전. 펄은 서서히 마음을 연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쉬즈모가 뜻하지 않게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뜬다. 한편 윌로우도 쉬즈모를 흠모했지만 펄을 생각하며 마음을 접는다. 그 대신 쉬즈모를 통해 알게 된 딕 린을 사랑하게 된다.


딕 린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겨우 살 만해진 윌로우의 앞날에는 또다시 고되고 버거운 삶이 기다린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서로 물고 물리는 어지러운 상황. 딕 린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의 핵심 인물이었다.


국민당이 외국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펄은 생애 중에서 반을 보낸 중국을 이제 떠난다.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결혼하고서 딸을 낳아 기르던 고향을 두고서, 둘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는 친구 윌로우를 두고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을 두고서.


마오쩌둥은 장제스를 대만으로 쫓아내고 정권을 잡는다. 딕이 세운 공로로 윌로우는 대궐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그곳은 허울만 좋았지, 편지 한 통까지도 감시하는 감옥이었다. 윌로우는 마오쩌둥이 정권을 잡으면서 저지른 만행에 치를 떨었다. 거기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가 남편 딕. 남편만 보면 불만을 쏟아붓는다. 탈출구는 오직 펄과 소통하는 것. 삐딱하게 돌아가는 중국 정세와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나누고 싶었다. 그렇지만 몰래 보내는 편지는 언제나 들통이 난다. 결국 윌로우는 감옥에 갇힌다.


윌로우의 삶은 갈수록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간다. 펄이 중국 소작농을 주제로 한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고, 마오쩌둥 정권에 비판을 가하자, 마오쩌둥의 부인은 윌로우에게 펄을 헐뜯는 이야기를 꾸며내라고 구슬린다. 윌로우는 단호히 거절한다. 혹독한 노역이 가해졌다.


할머니가 다 된 나이에, 윌로우는 형량을 끝내고 고향 전장으로 돌아온다.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할 때 펄도 동행한다는 소문을 접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품는다. 닉슨은 펄의 고향 전장을 방문한다. 윌로우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가슴 졸이며 펄을 찾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마오쩌둥 부인이 입국을 반대하는 공작을 펼쳤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은 말한다. "혹시 펄 벅을 아시는 분이 있나요?" 대통령과 가까스로 대화를 하게 된 윌로우는 말한다. "대통령 각하, 왜 펄과 함께 오지 않으셨나요? 왜 혼자만 오셨죠?" 대통령이 대답한다. "펄은 최선을 다했어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어요. 전장에 정말 오고 싶어 했죠."


마오쩌둥이 죽고 정권이 바뀌었다. 마오쩌둥의 뒤를 잇겠다고 안달복달하던 마오쩌둥 부인은 감옥에 가고 등샤오핑이 정권을 잡는다. 새 정권은 바깥 세상에 문을 활짝 열었다. 그사이 펄은 운명을 달리한다. 윌로우는 죽기 전에 펄을 한번 만나는 것이 소원이다. 무덤으로나마 펄을 만난다. 펄이 글 쓰며 살던 집에도 가본다. 집과 무덤은 펄이 어릴 적 보낸 전장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펄은 없었지만 펄이 머물던 곳, 머무는 곳에서 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펄이 중국을 떠난 지 40년이 됐지만 펄은 여전히 중국에 있었다.


'윌로우'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펄이 자신을 말하는 것보다 다른 이의 눈으로 펄을 살펴보는 것이 흥미롭다.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변혁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간 윌로우. 윌로우는 중국 민중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그런 윌로우가 펄 벅을 평생의 친구로 여긴다. 책은 번역이 깔끔하고 매끄러워 다시 한 번 빛난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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