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이디푸스’에서 오브제 연출과 동시에 배우로 출연하는 이영란. 이영란은 자신의 작업을 “막이 오르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공연 중엔 계속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그림은 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손 끝에서 ‘오이디푸스’는 매 회 공연마다 다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국립극단이 재단으로 재출범하고 처음 선보이는 연극 ‘오이디푸스’엔 새로운 장치들이 곳곳에 투입됐다. 오이디푸스를 평범한 인간으로의 설정하고 도발적인 언어와 음악으로 이를 꾸민다. 여기에 이들을 보고 있는 제 3자의 시선을 그리기 위해 시각적인 회화와 조각을 행위예술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려놓는다. 그리스 비극의 가면 뒤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표현해내기 위해 표현주의적 장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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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은 대중과 여론을 상징하는 ‘눈들’을 표현하기 위해 분필을 들고 무대에 선다. 높이 10m 길이 8m의 판에 매일 그리는 그림은 공연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국립극단의이수현 PD는 “공연 시작 전부터 1시간 40분 간의 공연 시간 내내 무대에 있는 것”이라며 “매일 다른 느낌으로 10번 공연을 본다면 10가지 모습으로 달라지는 그림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그리다 마모된 석고를 던지고 바닥을 치고 글씨도 쓴다. 그림으로 배경이 되고 소리로 무대에 진입하며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영란은 “필기용이지 그림용이 아닌 분필의 매력은 지워진다는 것”이라며 “무대만할 수 있는 아놀르그적인 힘으로, 기계나 장치가 아닌 인간이 있는 아날로그적인 생명력을 무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영란의 열정에 대해 한태숙 연출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로 작품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표현했다.
한태숙 연출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성미가 급하고 우울해하며 불안에 떨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남자”다. 그런 오이디푸스를 보는 ‘시선들’을 그리는 이영란의 작업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로 출발해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아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생을 더듬어 나갈 수 밖에 없는 그의 삶은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오이디푸스 역의 이상직, 크레온 역의 정동환, 티레시아스 역의 박정자, 요카스타 역의 서이숙 등이 출연하는 연극 ‘오이디푸스’는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계속된다.
<윤정현 기자 @donttouchme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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