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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마와 싸우고 있는 섬마을 약사의 가슴시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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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태울릉도동성당 노인학교장(왼쪽)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배경덕 약사를 병문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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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대구경북=김성권 기자]강원도 원주시 남원로 연세요양병원 한 병실에 핏기없는 얼굴의 낯익은 노인이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매일 매일 기억 한조각씩을 잃어가고 있는 이노인은 왕년의 울릉도에서 남을 위해 헌신해온 약사 배경덕(80)씨다.

처량하고 쓸쓸하게 요양원 침대에 누워있는 그는 울릉지역사회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해오며 소외되고 그늘진 이웃들의 아픔을 보듬고나눔의 봉사를 실천해온 이 시대의 보기드문 주인공이다.

인공호흡기 호스를 착용한 채 꼼작도 못하는 그는 눈썹까지 서리가 내린 듯 하얀데다 주름은 더욱 깊어져 있다. 깊어진 눈망울엔 초점도 없고 눈빛이 흐릿하다.

어려웠던 보릿고개시절,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당시 대구의 유명 대학교를 나와 60년대 초반부터 섬마을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왔다.

80년 초에는 울릉문화원장을 지내면서 1982년 울릉개척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장을 맡아 사비를 털어 섬 문화축제를 탄생시켜 오늘날 독특한 섬 문화가 있는 매력있는 울릉을 만든 화려한 경력의 그 배경덕 약사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는 형제약국을 경영하면서 약국을 찾아오는 섬 주민들에 필요이상의 가정상비약을 덤으로 더 줬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어진얼굴과 정성스런 처방으로 주민들의 건강을 살갑게 챙겼다.

지역의 커고 작은 행사의 찬 조자 명단에는 매번 상당한 금액으로 그의 이름은 단골로 올랐고 가난으로 약을 구입하지 못한 소식을 접하면 손수 약봉지를 챙겨 환자집을 방문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오래전 울릉도 도동성당 유치원 설립이 부족한 재원으로 사업추진이 어렵게 되자 섬 아이들의 학습 환경마련을 위해 거액의 특별성금을 선뜻 내놓았다.

특히 수만 평의 부지를 기부채납 하면서 성당묘지를 조성했다. 수십 년이 흘러 묘지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노른자 땅이 됐지만 그는 땅값이 비싸야 영혼이 편히 쉴수 있다며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보람 겨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그는 친.인척의 사업실패로 모든 재산이 탕진됐고 90년초 약국마저 접고 울릉도를 떠나 대구에서 궁핍한 생활을 이어오며 씁쓸한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20대에 결혼했던 부인도 ,그 많든 지인들도 모두 떠났다.

이 소식을 접한 섬주 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거둬 그를 다시 고향으로 불러왔고 과거 자신이 경영했던 형제약국 밑에 배약국이라는 작은 약국을 마련해줬다.

약을 팔아 근근이 생활을 유지해 오며 힘들게 버텨온 그에게 심한 당뇨가 찾아들었고 그후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해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됐다.

그렇게 아낌없는 나눔으로 살아왔는데 병마는 예외가 없었다.

울릉도 도동성당 신도들은 남을 위해 모든 것 다 베풀어주고 자신은 죽은후 누울 한 평짜리 집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신도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면 선행이라도 기억하자며 돈을 모았다. 너도나도 앞다퉈 낸 돈이 1천만원이 훌쩍넘었다. 그 돈으로 영원히 잠들곳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울릉~육지간 뱃길이 끊긴 지난 14, 도동성당 신도를 대표한 최종태 노인학교장은 12시간 이상의 화물선을 타고 포항에 도착한 후 단숨에 그가 누워 있는 원주로 달려가 병문안을 하며 신도들이 마음을 모아 마련한 돈을 보호자에게 전달했다.

최 노인학교장은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화물선을 이용해 급하게 찾아 뵙게 됐는데 옛 기억을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 삶의 덧없음이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과 같은 초로인생이 너무나 허무하다고"눈시울을 붉혔다.

섬주민들은 아무리 인생은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간다지만 저토록 자신을 위한 욕심도 없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눠준 그의 삶의 정신은 이시대의 보기 드문 아름다운 선행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의 친구
A(81.울릉읍 도동)씨는 모든사람들은 입으로는 무소유를 외치면서 맘속에서는 무한소유를 원하는 다양한 욕망들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아는 친구는 욕심없는 특별한 사람이었다.누구도 예외 없이 아름다운 이 세상의 무대 연기를 끝내고 소천을 한다것이 참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이별이다. 환한 미소에 천사같은 얼굴로 남녀노소를 대하며 건강했던 친구의 아픔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슬퍼했다.

천상병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인생, 어쩜 배경덕 약사가 결코 쉽지 않은 인생살이지만 소풍가듯 즐겁게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평생을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온 그에게 찾아온 인생의 봄이 부디 따뜻해지기를 기원해본다.

ksg@heraldcorp.com

( 본 기사는 헤럴드경제로부터 제공받은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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