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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리콘밸리 창업 선배가 들려주는 기술창업]②실리콘밸리 투자 방정식, '사람'에 주목한다
[헤럴드 분당판교=오은지 기자]리디스테크놀로지가 사업을 시작하게 만든 건 기술이었지만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은 건 시장을 읽는 눈이었다. 또 하나는 국내 시장을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처음부터 세웠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 창업자인 안성태 현 KAIST글로벌협력센터장이 최고경영자(CEO)로서 영업·마케팅을 담당하고 4명의 엔지니어가 개발을 맡았다. 미국 hp에서 근무하던 후배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했다.

실리콘밸리에 회사를 설립하고 엔젤투자자를 만나기 시작하면 우선 참신한 아이디어, 기술력, 창업 멤버를 본다. TV가 흑백에서 컬러로 변한 것처럼 휴대폰 딧플레이도 컬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STN-LCD 디스플레이 드라이버IC 기술을 컬러로 확대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기업에서 칩 개발 경험을 오래 쌓은 리디스도 엔젤투자와 RIM의 투자를 받고 2년간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안 센터장은 "처음 한국 사람들에게 받은 조언은 정부 자금을 활용하라는 것"이라며 "정부 지원을 받아 사무실을 열고 정부 과제를 하면서 도움을 받으라는 얘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과제를 하면서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다보면 안주하게 될 지도 모를 것 같아 엔젤이나 벤처투자자(VC) 외에는 일체 자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이후 2년만에 노키아 휴대폰에 채택이 되면서 구매승인서(PO)가 왔다. 설계된 반도체를 공장(팹)에서 양산하는 운전자금이 필요했다. 이 때부터 VC를 찾아 다녔다. 한국·홍콩·미국을 오갔다. 그는 "한국 VC는 만나보다가 곧 그만뒀다"며 "500만달러(12일 환율 기준 약 56억1250만원)가 필요했는데 한국 VC들은 3억원 내외 투자를 할 수 있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미국 회사 이사회는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명망가를 이사로 모시는 게 향후 사업이나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 안 센터장은 스탠포드 유학시절 알게 된 제임스 플래머 당시 스탠포드 학장을 찾아갔다. 플래머 학장은 숱한 제안을 받고도 이사회에 웬만하면 참여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가 회사 비즈니스모델을 검토한 뒤 리디스 이사회에 참여해줬다.

이사회가 구성되면서 이사회를 통해서 유명한 VC를 소개 받을 수 있었다. US벤처스파트너스(USVP), 월든인터내셔널(Walden International)이 공동 투자를 제안했다. 대규모 투자를 하는 회사들이라 500만달러가 아닌 1000만달러(약 112억2500만원)를 하한선으로 제시했다. 총 1400만달러가 입금됐다. 안 센터장은 "그 돈은 거의 쓰지 않았지만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많이 받아 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미국 VC들이 투자를 할 때 한국과 다른 점은 회사 소개서나 추천서를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한다는 점이다. 노키아로부터 물량 수주 받은 내용을 보여주면 노키아에 바로 확인 전화를 하는 식이다. 검증이 빠르고 철저하다.

또 하나는 CEO의 역량을 가장 크게 친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 저명한 벤처투자자인 USVP의 어윈 페더먼(Irwin Federman)과 월든인터내셔널 회장 립부탄(Lip-Bu Tan)은 여러 번 식사에 초대를 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테이블매너는 어떤지, 인간 관계는 어떤지 등을 끊임 없이 시험하는 자리였다"고 회상했다. 기술력에 대해서는 믿을만한 회사의 CEO, CTO와 만남을 주선해서 그에게 검증을 맡긴다.

창업자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받아가서 일일이 전화해보고 확인하는 절차도 있었다. 안 센터장은"그 사람 평판을 보고 회사를 이끌만한 소양이 있는지 됨됨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들은 '기술은 모른다, 사람을 본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실패하더라도 사람이 괜찮으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리도 배울 점"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투자가 인연이 돼 안 센터장은 지금도 월든인터내셔널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창업자들을 만나보면 그 회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대충 감이 잡힌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창업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하면 다른 역량 있는 CEO를 영입할 것을 제안하는 것도 투자자와 이사회의 역할이다.
on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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