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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내 우리가 돌아왔다”…2NE1, K-팝 기강 잡으러 온 원조 여제들 [고승희의 리와인드]
데뷔 15주년 맞아 컴백 콘서트
10년 6개월 만에 ‘다시 놀자’
3일간 1만 2000명 열광한 무대
2NE1 데뷔 15주년 콘서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마침내 우리가 돌아왔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여전사들이 돌아왔다. 각자의 길을 갔던 2NE1이 다시 뭉치기까진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번 콘서트의 제목 역시 ’웰컴 백(Welcome Back)‘. 다시 뭉치길 기다린 시간이 길었던 만큼 2NE1의 콘서트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화제였다. 당초 2회로 예정했던 공연은 3회로 늘려 지난 4~6일까지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올림픽홀에서 1만 2000명의 팬들과 만났다. 2NE1이 데뷔 콘서트를 열었던 곳이다.

공연은 시작부터 벅차 올랐다. 모두가 기다렸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2NE1의 모습 그대로, ’마침내 우리가 돌아왔다‘며 여왕들의 귀환을 알렸다. 첫 곡 역시 ’컴 백 홈(Come Back Home)‘. 흐트러짐 없는 라이브와 퍼포먼스로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떼창과 함성으로 네 멤버를 환영했다.

2NE1은 K-팝계의 기강을 잡으러 온 원조 여제들이었다. 그간 YG의 유산과 공연 노하우를 쏟아붓듯 2NE1의 콘서트는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으로 구성한 라이브 밴드 세션과 YG의 댄스팀이 함께 했다. 모든 순간 폭발적인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넘쳤다. 10년 만의 무대가 안겨주는 ‘추억 여행’이 아닌 ‘진행형 레전드’인 네 사람의 탄탄한 실력을 만날 수 있는 무대였다.

2NE1 데뷔 15주년 콘서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K-팝의 새로운 진화…여전한 전설이었다

‘섹시’와 ‘청순’ 콘셉트로 양분됐던 2000년대 K-팝 걸그룹 업계에 등장한 2NE1은 이들의 이름 그대로 ‘21세기의 뉴 에볼루션(New Evolution·새로운 진화)였다.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기량은 여전했다. CD를 집어삼킨 씨엘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월드클래스’ 여제의 귀환을 알렸다. ‘언니 라인’인 84년생 산다라박과 박봄은 불혹에 접어든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여전한 무대를 보여줬다. 이전의 산다라 박은 풋풋하고 사랑스러웠다면, 지금의 그는 완숙한 여유를 갖췄다. 2NE1의 대표 춤꾼이었던 막내 민지는 진화한 라이브 실력을 보여줬고, YG 여성 보컬의 표준을 제시한 박봄은 변치 않는 가창력으로 블랙잭(2NE1 팬덤)을 2010년대로 소환했다.

등장과 함께 내리 세 곡을 부른 투애니원은 오랜만에 만난 팬들에게 “다같이 놀자”며 본격적인 무대를 시작했다. ‘내가 제일 잘 나간다‘며 강인한 여성상의 표본을 제시하며 소녀팬들의 자존감을 끌어올렸고, 남자친구와의 이별 앞에도 쿨하고 당당하게 ‘아이 돈트 케어(I don’t care)’다. 무엇을 상상하든 늘 그 이상의 무대를 보여줬고, 후배들에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2NE1의 무수히 많은 히트곡이 이날 모조리 울려퍼졌다. 2NE1의 계보와 YG의 DNA를 이식한 상징적 그룹인 베이비몬스터는 토, 일 공연의 게스트로 등장, ‘실력파 걸그룹’의 유산을 이었다.

공연에선 팬들에게 시간여행을 떠나게 한 챕터도 있었다. 무대 위 카리스마와 달리 ’예능감‘이라고는 일정 없던 멤버들을 대중의 곁으로 다가서게 된 프로그램이 바로 2NE1 TV였다. 데쥐 시절의 앳된 2NE1은 천편일률적이던 가요계에서 늘 ‘새로움’을 갈망하는 그룹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엔 서로의 든든한 응원과 지지가 있어 버틸 수 있었고, 산다라박은 그 시절에도 “아직은 함께 있고 싶다”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2NE1의 무대가 특별한 것은 네 멤버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늘 묻어나기 때문이다. ‘언니 라인’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리더 씨엘은 “잘 하고 못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며 서로를 독려했다. 이날 무대 위에서 씨엘은 의외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웃음기 없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리더였지만, 이날의 씨엘은 종종 웃었다. 막내 민지가 탄탄한 가창력과 파워풀한 춤을 선보일 때, 산다라 박과 커플 댄스를 출 때, 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들을 때마다 씨엘의 얼굴엔 따뜻힌 미소가 묻어났다. 씨엘은 앞서 2022년 미국 LA 코첼라에 단독 무대로 초청됐을 당시, 2NE1 멤버들을 불러 모아 오랜만의 컴백 무대를 꾸몄을 만큼 그룹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2NE1 데뷔 15주년 콘서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어글리(Ugly)’를 부를 때 씨엘은 블랙잭을 일으켜 세웠고, 스탠딩 석과 의자가 있던 객석에선 모든 관객들이 하나가 돼 일어나 올림픽홀은 거대한 드럼 비트로 채워졌다. 여전히 누구도 넘어설 없는 깔끔한 무대 매너,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완벽한 가창력의 이 그룹은 지금 K-팝신에 가장 필요한 무대를 보여줬다. 파괴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그룹이다.

‘레전드 걸그룹’이 귀환한 만큼 이날 콘서트엔 현재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 하는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블랙핑크 제니를 비롯해 뉴진스, 스트레이 키즈, 씨엔블루 정용화, 아이콘 동혁, 보이넥스트도어, 위너 송민호 김진우, 빅배 대성, 세븐, 거미, 지드래곤, 이수혁, 윤도현, 샤이니 키, 소녀시대 태연, 에스파 윈터 등 수많은 동료들이 찾아 2NE1의 컴백 콘서트를 축하했다.

이들의 즐거운 이벤트도 있었다. 사실 가수들의 공연에서 ‘댄스 챌린지’ 파트가 앙코르 직전도 아닌 콘서트 중간 난데없이 등장하는 것이 의외였으나, 이는 모두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많은 선후배가 찾았기에,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보여주기 위한 의도이기도 했다.

데뷔곡 ‘파이어’가 나올 땐 15년의 시간이 흘러 2NE1 이후 가요계에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뉴진스 다섯 멤버들이 화면을 채워 댄스 챌린지에 도전했다. 뉴진스 멤버들은 다른 관객들과 함께 2NE1의 응원봉을 들고 공연 내내 스탠딩으로 대선배들의 무대를 함게 했다. ‘아이 돈트 케어’에선 2세대 K-팝 동기 씨엔블루의 정용화와 YG 식구들이었던 빅뱅의 대성, 거미, 세븐이 얼굴을 비쳤다. 윤도현은 ‘박수쳐’, 노홍철은 ‘내가 제일 잘 나가’의 댄스 챌린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관객들의 엄청난 박수를 받았다.

국내외 가수들의 축하 메시지 중엔 팝스타 퍼렐의 인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퍼렐은 “마이크를 안 차고 하려고 했는데 씨엘을 위해 마이크를 차겠다”며 “씨엘, 그리고 2NE1 컴백을 축하한다. 이젠 너희들의 시간이다”라며 네 명의 귀환을 축하했다.

2NE1 데뷔 15주년 콘서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잠시 사라진, 멈춰있던 그룹…우리에겐 치유의 시간”…2NE1의 이야기

이날의 무대는 15년 전에도 익히 알고 있던 네 멤버의 출중한 기량과 재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멤버 한 명 한 명의 탁월한 재능으로 만나 서로를 넘치도록 채워준 그룹이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출중한 멤버들의 조합이다.

“먼훗날의 박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고 했던 박봄은 무대에서 지문 같은 목소리로 여전히 노래했고, 막내 민지는 “지금 이 순간은 꿈에서 봤던 장면이다. 네 사람이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는 장면을 꿈에서 봤는데, 실제 상황인 걸 보면 꿈은 이뤄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극 F(감성형)인 산다라 박은 “우리멤버들, 각자 솔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만 이렇게 넷이 꼭 함께 하고 싶었다”며 쏟아지려는 울음을 참았다.

늘 맏언니같은 씨엘은 “4개월 전만 해도 잠시 사라진, 멈춰있는 그룹이었는데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어 꿈만 같다”며 “지금 이 자리는 저희 네 명에겐 치유가 되는 자리다. 모두 다 여러분 덕분이라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게 있다면 무섭고 막막하더라도 도전하시라고 저희 투애니원이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2NE1 데뷔 15주년 콘서트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진심이 담긴 이야기 뒤에 다시 시작한 무대는 ‘컴백홈’으로 다시 돌아갔고, 18곡을 모두 마치자 올림픽홀을 꽉 채운 관객들은 “더 놀자”를 외치며 2NE1을 다시 불렀다.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단 한순간도 지치지 않았고, 손에 쥔 휴대폰과 응원봉을 놓치 않았다. 누구도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아 마지막 공연은 장장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공연은 끝나도 끝난게 아니었다. 올림픽홀을 뒤흔드는 드럼 비트에 관객들은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끊임없이 “놀자”를 외쳤다.

이날 공연장엔 연령대도 다양했다. 2NE1과 10대~20대를 함께 보낸 블랙잭이 훌쩍 성장해 이곳을 찾았다. 매회차 객석은 20~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자리했다. 2NE1 마지막 코서트를 보기 위해 홍콩에서 날아온 지니(28) 씨는 “홍콩 공연이 예정돼 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오고 싶어 서울에 오게 됐다”며 “3일 모두 보고 싶었지만 티켓을 구할 수 없어 마지막 공연만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대 초반 때부터 2NE1이 나의 유일한 아이돌이었고, 2NE1 때문에 블랙핑크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2NE1을 좋아했다는 김주리(26) 씨는 “내 삶의 절반 이상의 날들에 2NE1이 있었다”며 “그 어떤 가수와도 달랐고, 단 한 번도 없던 콘셉트와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그룹이라 팬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3일 내내 공연에 왔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너무 슬프고 힘들다”며 아쉬워했다.

현장엔 20대 딸과 50대 부모님이 함께 온 관객도 있었다. 2NE1 응원봉까지 야무지게 챙긴 아버지 김진형 씨는 “딸이 2NE1의 팬이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곡들이 많아 나도 잘 알고 있다”며 “요즘 아이돌도 잘 하지만 역시 실력이나 모든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 깜짝 놀랐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서울 콘서트를 마친 2NE1은 9개 도시 15회차에 달하는 아시아 투어를 시작한다 마닐라, 자카르타, 고베, 홍콩, 도쿄, 싱가포르, 방콕, 타이베이로 발걸음을 옮겨 보다 많은 글로벌 팬들과 만나고 돌아와 ‘앙코르 공연’을 열 계획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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