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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도까지 헐어 물도 못 삼켰다”…명의도 겪은 ‘암’[우리사회 레버넌트]
노성훈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인터뷰
38년간 1만1000여건 위암 수술 집도한 권위자
후두암 2기 판정…“환자 진실로 이해하는 계기돼”
“작은 것에 감사해하는 긍정적 사고로 암 극복”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한국인이 사망하는 원인 1위 ‘암(癌)’. 보건복지부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암 환자수는 총 27만7523명에 달한다. 기대수명(83.6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8.1%이며, 남자(80.6세)는 5명 중 2명(39.1%), 여자(86.6세)는 3명 중 1명(36.0%) 꼴로 암을 경험한다.

특히, 위암의 경우 국내 발병률은 세계 3위다.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30대에서 암 사망 원인 1위로 위암이 꼽히기도 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2일 올해로 38년째 위암 환자들의 수술을 책임지고 있는 노성훈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를 만났다. 노 교수는 세계 최초로 위 절제술만 1만1000여건 이상 집도해 국내 위암 수술 최고 권위자로 거론된다. 과학인용색인(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도 300여편이나 게재, 진료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발군의 실력이다. 밤낮, 휴일 구분없이 환자들 곁을 지키는 그를 두고 국내 의사들은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별명을, 외국 의사들은 ‘닥터 몬스터(Dr. Monster)’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노 교수조차도 암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암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노 교수는 지난 2010년대 초, 처음 후두부 이상을 느꼈다. 초기 증상은 경미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거칠어졌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병원에선 후두쪽 점막에 이상 변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도 다행이라 느낀 것은 당시 암은 아니라고 진단받아서다. 대신 3~6개월 단위로 정기 검진을 받으면서 경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이후 3번 정도 이비인후과를 더 찾아가 후두 상태를 살폈지만, 그때마다 의사는 ‘이상 없다’ ‘계속 검진하면서 보자’ 등 같은 말을 반복했다. 노 교수는 ‘어차피 병원에 가도 듣는 이야기는 똑같다’ ‘바쁘니까 나중에 가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엔 검진을 건너 뛰고 일에만 몰두했다.

“그때 의사 선생님 말대로 검진을 꾸준히 받았어야 했는데, 제가 완전 오만했죠.” 노 교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강의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이 이전과 같지 않다고 느꼈다. 곧장 이비인후과로 갔다. 노 교수는 그날로 후두암 2기 진단을 받았다. 1954년생인 노 교수가 만으로 60세가 되던 2014년이었다.

노 교수는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내가 암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암입니다’라는 소리를 직접 듣게 되니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노 교수는 의사로부터 암 진단 결과를 통보받던 당시의 충격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황망한 기분이 들었다. 일평생 수없이 많은 암환자들을 만나고 암 수술을 집도해왔지만 정작 자신이 암 환자가 될 것이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노 교수는 ‘어떻게 나에게 이런 병이 생겼을까’ ‘왜 하필이면 나일까’ 등 허망함에 찬 물음만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고 전했다.

몇 분 뒤부터는 자신에 대한 분노가 올라왔다. “나에 대한 실망이 확 커졌어요. ‘건강검진만 제대로 챙겼어도 이런 고생 안 했을텐데’ ‘평소에 미리 건강관리도 좀 해둘걸’ 이런 후회들이 한번에 밀려오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다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싶으면서도 후회를 멈출 수 없더라고요.” 노 교수는 아찔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피어났다. 노 교수는 “순간 가족들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데, 아이들과 어울린 기억이 많이 없더라”라며 “아이들이 ‘도대체 아빠는 언제 집에 들어오냐’며 불만을 내비쳤던 게 생각이 나 울컥했다”고 했다.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암 진단 결과를 듣고 나서 며칠동안 노 교수는 요동쳤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혼자만의 정리 시간을 가졌다. 이후 아내에게 암에 걸린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아내는 걱정보다 도리어 씩씩한 말투로 ‘당신 이런 걸로 죽지 않는다’ ‘치료 받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그를 다독였다. 아내의 반응에 용기를 얻은 그는 하루에 한 갑 이상씩 피웠던 담배와 꾸준히 마셔오던 술을 끊고 치료에 전념했다. 목에서 진물이 나고 식도 안까지 헐어 물 마시기조차 고역이었지만 그렇게 8주 동안 25번 가량의 방사선 치료를 겪어낸 끝에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노 교수는 암을 극복하기까지 참으로 고통스러웠지만 암 환자들을 더 잘 이해하라는 신의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으며 투병 생활을 보냈다고 했다. 노 교수는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도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만큼 암 완치를 이끄는 건 없다고 봤어요. 작은 것에도 감사해하고 당장은 힘들어도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치료를 받다보면 결국 살아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암 환자가 됐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 교수는 암 환자의 입장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어떻게 보면 환자들을 말로써만 위로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책에서 나오는 암 환자의 심리 상태 변화 등을 직접 내가 암 환자로서 하나하나 느껴보니 환자들을 마음으로 위로해 줄 수 있게 됐다”며 “암 극복기를 환자들에게 이야기 해줄 때 환자들이 용기를 얻는 걸 보고 내 경험의 힘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노 교수는 암 환자들에게도 ‘긍정적 사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 교수는 암 환자들로부터 ‘살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는 “암에 걸릴 확률이 3분의 1이라는 건 내 주위에 세 사람이 모여 있으면 그 중에 한 명은 암이라는 것”이라며 “그만큼 암은 흔한 병이 됐고 예전과 달리 의학 기술의 발달로 충분히 치료가능한 병이 됐다. 걱정을 안 할 수야 없겠지만,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게 암 극복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힘줘 말했다.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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