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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민화 교육·구타” 조선인 1500명 강제노역 …日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에
사도 광산 기타자와 지구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동원돼 강제노역했던 사도(佐渡) 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생명을 건 노동이었다는 증언이 나왔음에도 일본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신청 과정에서 이를 외면했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7일 일본이 신청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결정했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조선인의 사도 광산 강제노역과 광산의 열악한 환경은 니가타현 지역 역사서와 시민단체 조사 결과 등에 남아 있다.

니가타현 당국이 1988년 발행한 ‘니가타현사’는 “1939년 시작된 노무동원 계획은 명칭이 ‘모집’, ‘관(官) 알선’, ‘징용’으로 변하지만,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에서는 동일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니가타현 사도시에 있던 옛 지자체인 아이카와마치(相川町)가 1995년 펴낸 ‘사도 아이카와의 역사’ 역시 “1945년 3월이 (조선인) 모집 마지막으로, 총 1200명이 사도 광산에 왔다고 한다”고 분명히 적시했다.

시민단체가 1992년 진행한 청취 조사에선 강제동원 경험자 중 한 명이 “매일 황민화(일왕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 교육을 받았다. 말을 듣지 않으면 ‘기합’을 받았다. 구타 등”이라고 증언이 남아있다.

역사 연구자인 다케우치 야스토 씨는 다른 연구자, 지역 주민들과 함께 지난달 일본에서 출판한 ‘사도 광산·조선인 강제노동 자료집’에서 일본 자료와 증언 등을 토대로 “사도 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수는 1500명을 넘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동원된 조선인들은 경찰과 기업으로부터 감시받았다”며 “직장을 옮기는 자유를 빼앗겼고 죽음을 무릅쓰고 생산량을 늘린다는 구호 아래 생명을 건 노동을 강요받았다”고 지적했다.

정혜경·허광무 박사도 2021년 펴낸 ‘탐욕의 땅, 미쓰비시 사도 광산과 조선인 강제동원’에서 “한국 정부가 피해 판정을 한 사도 광산 피해자는 148명이며 그중 9명이 현지에서 사망했다”며 “피해자 중 30명이 진폐증, 15명이 폐 질환을 각각 신고했다”며 광부 상당수가 갱 내에서 먼지를 많이 마셔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사도 광산에서 조선인이 강제로 노역했다는 연구 결과는 많지만, 일본 정부는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당시의 역사를 외면하기 위해 유산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가 중심인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 광산에 대해 “19세기 중반 막부 종언까지 이뤄진 전통적 수공업 금 생산 유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계화가 도입되기 이전에 수작업으로 금을 채굴했다는 사실을 부각, 이를 위해 일본어 유산 명칭도 ‘사도 광산’이 아닌 ‘사도섬의 금산(金山)’으로 붙였다.

이러한 명칭에는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구리, 철, 아연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이용된 사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은 그러면서도 에도시기가 끝난 뒤에 만들어진 시설이 핵심을 이루는 기타자와 지구를 세계유산 구역으로 포함해 신청하는 ‘꼼수’도 부렸다.

기타자와 지구에는 사도 광산을 상징하는 근대유산이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기타자와 부유선광장(浮遊選鑛場)’이 있다. 이곳에서는 채굴 단계에서 나오는 금속과 폐기물 등을 분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에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지난달 6일 공개된 사도 광산 평가 보고서에서 일본이 제시한 유산 시기와 동떨어진 근대 유산 지역을 제외하라고 권고, 일본 정부도 이를 수용했다.

이코모스는 뿐만 아니라 “전체 역사를 현장 레벨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 전략을 책정하고 시설과 설비 등을 갖추라”는 추가 권고를 통해 한국이 요구한 조선인 강제노역 사실 반영을 사실상 요구했다. 이에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사도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일부 구역에 사도 광산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전시 시설을 마련했다.

다케우치 씨는 자료집에서 “일본은 당초 한국 측 강제노동 비판을 염두에 두고 (신청) 보류를 검토했지만, 자민당 국가주의 단체 압력을 받아 신청했다”며 “보수파는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선전했으나, 조선인 강제노동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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