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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콘텐츠 이노베이터’ 김민기, 인간·문화에 대한 사랑이 콘텐츠의 원천
여러 수식어 불구 ‘문화예술인’이 제격
민중의 삶 노래…운동권 불러 ‘금지곡’
소극장 학전 통해 후배 가수·배우 배출
어린이 사랑 각별…돈 없어도 공연 올려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 가수 고(故)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21일 별세한 김민기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는 싱어송라이터, 뮤지컬 연출가, 극단 학전 대표, 민주화 운동가 등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문화예술인'으로서의 그의 일관된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이 시대 좋은 어른의 표상이다. 온 국민적 추모의 열기는 그런 그의 발자취를 확인해주는 현상이다.

1970~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저항의 아이콘'으로 힘든 인생을 살았고, 그 후에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 학전(學田)에서 '뒷것'으로 철저히 무대 뒤의 삶을 지향하며 '앞것'들인 아티스트들을 키웠다.

1951년생인 김민기는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지만 그림 보다는 음악의 세계에 빠졌다. 지금은 디자이너로 유명한 김영세와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해 명동에 있던 '청개구리의 집' 등에서 노래했다.

1971년에 발표한 음반 '아침이슬'에 실린 동명의 곡과 '작은 연못'은 정치적인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 창작곡이지만, 오랜 기간 대학생들이 집회나 시위를 할 때 부르는 노래로 사용됐다. 김민기가 친구의 죽음을 겪고난 후에 썼다는 '친구'마저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유신정권은 그의 노래에 금지곡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고 김민기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이후 김민기는 노래를 직접 부르기보다는 후배 가수 양희은에게 '늙은 군인의 노래'를 주는 등 창작자로서 주로 활동했다. 공장에서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노동자들을 위한 축가 '상록수'를 만들었고,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의 삶을 직접 보고 만든 노래극 '공장의 불빛'은 정권의 감시를 피해 가수 송창식의 집에서 몰래 녹음해 제작했다.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가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지난 2011년 2월 21일 극단 '학전'의 창단 2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고인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

김민기는 1991년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열어 수많은 예술가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김광석·동물원·들국화·유재하·나윤선·장필순·박학기·권진원·윤도현·유리상자 등이 초기 이 곳에서 노래했다. 그가 연출해 1994년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는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이정은·안내상 등 뛰어난 배우들이 배출됐다. 공연은 4200회 이상 이어졌다.

김민기의 별세 소식에 ‘지하철 1호선’ 원작자인 독일 극작가이자 그립스 극단 창립자 폴커 루트비히는 “위대한 시인이자 음악가를 잃었다.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한없이 겸손한 자유 투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루트비히는 번안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독창성과 학전의 재정난을 고려해 1000회 공연 때부터는 아예 저작권료를 받지 않았고, 베를린에 있는 그립스 극단의 창단 50주년 축제(2019년)에는 학전의 ‘지하철 1호선’을 폐막작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연을 시작해, 인기 예능이었던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전신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모두 학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SBS 스페셜-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김민기 다큐멘터리인 ‘SBS 스페셜-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가며 설명했지만, '지하철 1호선' 공연으로 흥행에 성공해 돈을 벌기 시작했음에도 김민기는 돈이 안되는 어린이 연극과 뮤지컬을 만들어 어린이들에 대한 열정을 쏟았다.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 학전에서 올린 어린이극은 어린이들에게 판타지를 보여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고민을 본질적으로 이해해주려는 목적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김민기 학전 대표 [학전 제공]

김민기의 어린이 사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신정야학을 만들어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다. 달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공공 보육시설 '해송유아원' 건립도 김민기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가능했다. 특히 그는 학전에서 어린이 무대가 있는 날이면 매번 직접 객석으로 내려가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곤 했다. '학전'이 재정난 속에서도 어린이 무대를 20년 동안 이어 온 것도 어린이를 향한 김민기의 진심 어린 사랑 덕분이었다.

후배들은 김민기의 업적을 기리며 “그저 ‘상록수’ 같은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그의 인간과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고민은 좋은 콘텐츠의 원천이 됐다. 그가 'K-콘텐츠의 이노베이터(혁신가)'로 기억돼야 하는 이유도 그의 작품이 두고두고 감상할 수 있는, 후세에 도움이 될 콘텐츠를 남겼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고인은 지난 2018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홀에서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 은관을 받으면서 수줍어하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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