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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록수처럼 우리 곁에 계실 것”…대중예술 인사들 애도의 물결
21일 암 투병 중 별세…향년 73세
정재계, 종교계 각계각층 인사 추모
소극장 ‘학전’ 출신 배우·가수 조문
故 김민기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김형석·알리·김민기·박학기·이적·황정민·강승원·조경식 감독(아랫줄 왼쪽부터 반시계방향) [박학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작년 10월 형님 아들 결혼식 때였어요. 아무도 모르게 오라 하셨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상록수’가 원래 축가로 만든 거잖아요. 알리가 축가를 하고, (김)형석이가 피아노 반주를 했죠. (이)적이한테 ‘다행이다’를 부르게 했고요. (황)정민이는 외국에 있다가 급히 왔어요. 이 때만 해도 얼굴이 좋았는데…”

평온하게 웃고 있는 고(故) 김민기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가수 박학기는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아직 이별하기엔 이른 듯 그의 목소리 안에서 고인은 생생히 살아있었다. “사진을 남겨놓길 잘했다”는 말 뒤에 황망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시대정신’을 노래하고, 한국 대중문화의 터전을 닦아 온 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던 그는 경기도 일산의 자택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지냈다.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며 최근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 22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대학로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엔 그의 별세 소식을 들은 각계각층 인사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오후 12시 30분부터 차려진 빈소엔 늦은 시간까지 조문을 위한 행렬이 긴 줄로 늘어섰다. 학전에서 함께 해온 젊은 직원들은 ‘큰 산’ 같은 고인의 마지막을 꿋꿋이 지키면서도 그의 영정 사진 앞을 떠나선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빈소에서 만난 장현성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조금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셨으면 감사했을텐데 마음이 아주 황망하다. 요 며칠 컨디션이 좋아지셨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다”며 “(김민기)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건강히 좋은 시간을 보냈다. 편안하게 좋은 곳으로 가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이 일생을 바친 소극장 학전에서 배우로 성장한 장현성은 관객들 사이에서 이른바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렸다. 설경구·김윤석·황정민·조승우 등과 함께다. 이들이 출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 이후 8000회 이상 공연된 한국의 대표 창작 뮤지컬이다. 장현성과 일찌감치 빈소를 찾아 오랜 시간 머문 황정민은 눈이 불거진 채 장례식장을 나섰다.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배출해 온 가수 김민기가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연합]

1991년 김민기가 음반 계약금으로 연 180석 규모의 소극장 학전은 한국 공연문화의 산실로 자리한 곳이다. ‘배움의 밭’이라는 뜻으로,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예인들의 ‘못자리’가 되길 바라는 고인의 마음을 담았다.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배우와 음악가들이 태어났고, 그들의 걸음 걸음이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이어졌다. 700여명의 예술인은 배출한 학전은 지난 3월 문을 닫았다.

1997년 12월 학전에서 데뷔한 유리상자 이세준은 “너무 안 좋으셔서 우리끼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막상 소식을 전해들으니 너무나 황망하고 아쉬움이 크다”며 “만나고 통화할 때마다 그저 고맙다, 고맙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만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절에 싸워주신 분이다. 우리 후배들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마음과 정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끄트머리가 저희가 아닌가 싶다”며 “항상 선배님의 정신을 이어가고 전하려 했는데 최근 학전 폐관 소식으로 오히려 많은 분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본인은 원치 않으신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후배들이 마음의 빚을 조금 덜 수 있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후배 가수들에게 김민기는 ‘시대의 상징’이며, 함께 성장을 해온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고인의 노래는 오랜 시간 독재 정권의 눈엣가시였다. 발표하는 곡마다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만든 ‘공장의 불빛’(1978), 인천 피혁 공장 노동자의 결혼식 축가로 만든 ‘상록수’(1977), 저항의 현장마다 울려퍼진 ‘아침이슬’(1971)까지 시대의 아픔과 극복의 의지가 담긴 그의 노래는 늘 저항의 상징이었다.

이날 빈소를 찾은 가수 윤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큰 산 같은 분”이라며 “양희은 선배님이 부르신 ‘백구’를 듣고 선생님이 작곡하셨다는 것을 알고, 모든 곡들을 찾아 들었다. 도저히 다가설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신 분”이라며 고인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많이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전부터 들었지만 그래도 빨리 떠나신 거 같아서 마음이 황망하고 슬프다”고 했다.

김민기 학전 대표 [학전 제공]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를 부른 추가열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도 이날 빈소를 찾아 “포크가 전신이었던 내게 전설 같은 분”이라며 “선생님이 만든 ‘상록수’처럼 늘 우리 곁에 계실 것이라 믿는다. 후배들이 열심히 선생님의 정신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엔 고인과 대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도 찾았다. 유 교수는 고인에 대해 “겸손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밖으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그가 이룩한 것들은 우리의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이 됐다”고 말했다.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는 빈소에선 말을 아꼈지만 장례식장을 찾기 전 “역경과 성장의 혼돈의 시대, 대한민국에 음악을 통해 청년 정신을 심어줬던 김민기 선배에게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며 명복을 빈다”는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빈소가 문을 닫는 밤 10시 30분까지 정치계, 종교계, 대중문화계 인사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가수 김창완, 김광진, 이은미, 권진원, 노영심, 장기하, 알리, 박시완은 물론, 배우 이호재 문성근 강신일 이병준 류승범 김희원 김대명 배성우 등이 조문했다.

유족과 학전 가족들은 고인을 배웅하는 길에 조의금과 조화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고인의 조카이기도 한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 혹은 누가 와도 ‘너 밥은 먹었니’라고 하셨을 것”이라며 “그저 밥 한 끼 나눠 먹으면 선생님도 가시는 길에 마음이 편하실 것 같다. 학전을 폐관하면서 십시일반 도와주셨고, 선생님 노잣돈은 충분히 마련됐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고인을 쉽게 보낼 수 없는 마음들이 조화로 늘어설 수밖에 없었다. 빈소에 공연계술 기관, 방송사, 정치계, 대중문화계에서 보내온 조화들이 자리했다.

고인이 떠나기에 앞서 문을 닫은 학전은 지난 17일 ‘아르코꿈밭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고인의 뜻을 받아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으로 운영한다. 고인은 이 공간이 ‘학전’이란 이름을 쓰지 않도록 했다. 학전이 정치·경제적,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민기가 없는 공간에선 그의 작품들을 볼 수는 없다. 김 팀장은 “김민기가 연출하지 않는 ‘지하철 1호선’은 없다”고 말했다. 자만 “많은 분들이 염원한다면 학전의 40주년, 50주년이 되는 날 (기념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유족과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고인의 마지막 걸음은 그가 일생동안 지켜온 학전에서 끝을 맺는다. 오는 24일 오전 발인 이후 학전 마당과 극장을 둘러본 뒤 천안 공원묘원의 장지로 향해 영면에 든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2남이 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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