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국군 지시 수행하다 북한군에 처형 당한 민간인…법원 “국가유공자로 볼 수 없어”
“전투 중이거나 이에 준하는 행위 중 사망해야”
서울행정법원[헤럴드DB]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한국전쟁은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다. 국군의 명령을 따르다 북한군에 희생된 자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국군의 지시를 수행하던 중 사망했다 해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투 중이거나 이에 준하는 행위 중 사망해야 한다고 요건을 분명히 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8부(부장 이정희)는 최근 한국전쟁 중 사망한 A씨의 유가족이 서울지방보훈청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유공자 등록거부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국가유공자법 상 전몰군경은 군인이나 경찰공무원, 순직군경은 군인이나 경찰·소방 공무원이 사망한 경우를 요건으로 한다. 즉 사망 당시 직업이 1차적인 전제 조건이다. 다만 이에 해당하지 않아도 전시근로동원법에 따라 동원됐거나 청년단원·향토방위대원 등 애국단체원으로서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나 관련 교육훈련 중 사망한 경우라면 전몰군경·순직군경으로 인정될 수 있다.

원고에 따르면 A씨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 지시에 따라 마을 공용 창고에 보관 중인 쌀을 옮기는 등 부역 활동을 했다. 이후 마을을 습격한 북한군에 체포돼 국군 부역을 이유로 1951년 처형당했다. 유가족은 국가유공자법에 따른 전몰군경 또는 순직군경에 해당한다며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을 신청했으나 거부됐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A씨가 국군의 지시에 따라 ‘동원’되어 업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군에게 처형됐기 때문에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원고측 주장이다. 또 국방부로부터 참전사실 확인서를 발급 받았고,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작성한 6·25전쟁 사변 피살자 명부에도 A씨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법원은 서울지방보훈청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국군의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로 북한군에게 처형당했다 해도 국가유공자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만으로 망인(A씨)이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 중 사망한 사람’ 또는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서 전몰군경 또는 순직군경에 해당한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했다.

국가유공자법과 시행령은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 중 사망한 사람’의 기준·범위를 8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전투 또는 이와 관련된 행위 중 사망 ▷공비소탕 작전 또는 대간첩작전 동원돼 임무 수행 중 사망 ▷공비소탕 작전 또는 대간첩작전 수행 위한 인원·장비·물자를 보급·수송하던 중 사망 등이다.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관련있는 직무수행’에 대해서는 ▷장비·물자 등 군수품의 정비·보급·수송 및 관리 ▷경계·수색·매복·정찰 ▷첩보활동 등으로 정했다.

재판부는 “6·25사변 피살자 명부에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것이 전투 중 사망했다는 점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명부에는 ‘군경을 제외한 비전투원에 한한다’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며 “오히려 원고나 인우보증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망인은 ‘사망 수일 전에’ 국군 요청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며칠 후 집에서 잠을 자다 잡혀가서 처형 당한 것이다. 전투 중 사망했다거나 군수품 보급·수송 지원행위 중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A씨가 국군에 동원된 것이라 볼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찰서가 보훈청에 회신한 바에 따르면 ‘애국단체원 순직대장 등 경찰서 제공부상에서 대상자(A씨)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며 “군부대나 경찰관서의 장에 의해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행위를 위해 동원·징발 또는 채용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