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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걀·꿀 바르던 ‘조선미녀 피부관리법’ 세계를 사로잡다
돌아보는 한국 화장품史...새 역사 창조
1916년 첫 화장품 ‘박가분’부터 K-뷰티까지
세계 최초 BB크림 발명한 화장품 선진국

“겨울에는 달걀을 네 이레(28일) 동안 술에 밀봉해 담근 뒤에 얼굴에 발라라. 그러면 윤지고 옥 같아진다. 손과 얼굴이 터 피가 나면 돼지기름과 회화나무 꽃(槐花)을 붙이면 낫는다.”

조선시대 화장품 기술서로 알려진 ‘규합총서(1809)’의 일부다. 이 책은 여성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쓴 5권의 시리즈였는데 이 중 2권에는 몸단장과 화장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미녀’들도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달걀로 보습을 챙기고 마늘에 꿀을 섞어 하룻밤 재운 뒤 천연 팩을 직접 만들었다. 꿀 찌꺼기에 향을 더한 오늘날 영양크림 격인 윤안향밀(潤顔香蜜)도 직접 제조해 발랐다.

아름다움을 향한 노력은 수백 년이 지나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쿠션과 B.B 크림 개발’로 세계 화장품 역사를 새로 쓰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는 K-뷰티에 열광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국산 화장품의 역사를 통해 K-뷰티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화장품은 존재했다. 피부의 때를 씻는 조두( 豆, 세정제), 미안수(화장수), 면약(크림에 해당), 분백분처럼 말이다. 어른들이 쓰는 “분(粉)을 바른다”는 표현도 여기서 유래했다. 색조화장에 해당하는 색분은 백합의 붉은 꽃수술의 분말을 채취해 만들어졌다. ‘핑크 메이크업’의 원조인 셈이다.

한국의 화장품은 과거 막걸리, 소주처럼 자가 제조하거나 문중(門中)에서 만들었다. 그러다 1900년대 개항과 함께 조선에는 서양의 화장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큰 변화는 색조화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대량생산해 보급하는 공산품 화장품의 시대는 개화기를 만나 본격적으로 열린다. 이때 등장한 한국의 첫 현대식 브랜드 화장품이 박승직 상점(두산그룹 전신)의 ‘박가분(朴家粉,1916)’이다. 지금의 파우더 격인 당시 박가분은 기미와 잡티를 감춰준다고 입소문을 탔다. 잘 나갈 때는 하루 1만 갑까지 팔렸다고 한다.

박가분의 성공에 힘입어 1930년대에는 장가분, 서가분 등 유사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화장품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퍼져자 삼호화장품, 에레나화장품 같은 화장품 회사들도 생겨났다.

당시 한국에는 제대로 된 크림 화장품은 없었다고 한다. 일본 브랜드인 ‘구라부’와 ‘레도’의 크림을 쓰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생활건강)이 첫 국산 보습 영양크림인 ‘럭키크림’을 내놓는다. 럭키크림은 당시 이례적으로 미국 영화배우 디아나 더빈의 얼굴이 제품 패키지에 들어간 탓에 ‘외제’란 소문까지 퍼질 정도였다.

1970년대 당시 태평양화학의 색조 색상들
1971년 한국 최초의 메이크업 캠페인 ‘오 마이 러브’가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모습 [아모레퍼시픽 제공]

화장품의 발달만큼이나 화장 스타일도 진화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며 따라 온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1947년 한국에서 남녀공학제가 최초로 실시되며 이후 여성의 교육 및 경제활동 참여가 크게 늘었다. 동시에 1950년대 들어 해외 영화, 문물이 들어오며 서구 문화가 퍼졌다. 색조화장의 힘이 본격적으로 여성들에게 전파된 건 1970년대부터다.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 한국 최초로 1971년 메이크업쇼 ‘오 마이 러브’를 진행하면서 색조화장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1980년대 유행했던 색조 메이크업 화장품들 [아모레퍼시픽 제공]

1980년대는 ‘컬러의 향연’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화려한 메이크업이 절정에 달했다. 컬러 TV의 등장이 큰 영향을 줬다. 개성과 색감을 드러내는 파랑, 초록 색상이 들어간 과감한 눈두덩이 화장이 나타난 것이다. 각양각색의 색상 및 컬러 팔레트들과 함께 색조 화장품들이 발달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색조화장이 어느 정도 대중화되자 1990년대부터 화장품에 대한 기대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메이크업과 미용을 넘어, 피부 보호와 노화 방지 등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이다. 1997년 3월 한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레티놀 수용성 안정화에 성공한 제품이 등장하면서 기능성 화장품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아모레퍼시픽은 처음으로 주름 기능성 화장품 인증을 받은 ‘아이오페 레티놀 2500’을 내놓았다.

2000년대에는 에뛰드, 미샤, 토니모리, 스킨푸드 등 로드숍 브랜드들이 생겼다. 수많은 10대 학생들을 매장으로 향했다. 이들 로드숍의 인기는 최근 10대들의 놀이터로 자리매김한 다이소 인기 못지않았다.

이 시기에는 기존에 없던 획기적인 제품이 나왔다. 2006년 출시된 B.B 크림이 대표적이다. 한스킨라는 업체가 그해 유행한 ‘생얼 메이크업’ 트렌드에 맞춰 내놓은 제품이었다. B.B 크림은 붉은 피부를 커버하는 데 효과가 있었던 독일의 연고 블레미쉬 밤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이 제품은 피부 톤을 잡는 파운데이션 위주였던 화장품 시장에 영양 등 스킨케어적 요소를 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여기에 2008년 3월 아모레퍼시픽이 세계 화장 문화를 바꾼 제품을 내놓는다. 바로 주차 확인 스탬프에서 착안한 쿠션이다. 스펀지 재질에 메이크업 제품을 흡수시켜 팩트형 용기에 담은 이 제품은 여성들의 화장 습관과 시간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오페의 에어쿠션이 나온 후 한국인의 평균 메이크업 소요 시간을 13분에서 7분으로 줄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단일 품목으로는 2013년 9월 누적 판매량이 1000만개를 찍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최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아마존 K-뷰티콘퍼런스 셀러데이’에서 관련 부스를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 [연합]

한국 화장품은 2010년대 중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중심으로 중국에서 급성장, 전성기를 맞이한다. 보따리상들은 한국 화장품을 쓸어 담아 갔다. 셀 수 없이 많은 화장품 업체들이 중화권에 진출했다.

그러나 중국에 집중했던 한국 뷰티업계는 사드 사태와 코로나19를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이제는 그 무게중심이 미국, 유럽 등 서구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K-팝, K-문화의 확산과 더해져 북미, 남미, 아프리카에서도 ‘글라스 스킨(glass skin, 유리 피부)’, ‘코리안 스킨케어’를 외치며 한국 화장품을 찾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의 유명 제품이 해외에 알려졌다면, 이제는 아마존에서 인기 있는 한국 제품이 역으로 국내에 소개가 된다.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는 이제 1만개가 넘고, 수출에 나선 업체는 8000개를 넘는다. 올해 1월 기준 화장품 수출액은 23억 달러로 동기간 역대 최대실적을 기록할 정도로, K-뷰티는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김희량·전새날 기자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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