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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은 클래식? 야나체크, 민속-클래식 경계를 허물다[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클래식(Classic)’은 넓게, 좁게, 아주좁게 등 범위에 따라 여러 뜻을 갖는다. ‘이태원 클라스’에서 처럼, “클라스(Class)가 있다”는 식의 어감일때엔 ‘최고 수준의’, ‘일류의’라는 의미이고, 명사로는 ‘고전’, ‘명작’, ‘모범’이라는 사전적 뜻을 갖고 있다.

좁은 의미로는,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이나 연주법에 의한 음악’이다.

흔히 ‘팝 음악’(한국어의 오래된 번역은 대중음악인데, 클래식도 대중을 상대로 하므로 이런 표현은 문제가 있다)에 상대되는 말로 쓴다.

브르노 야나체크 극장

▶클래식은 대중음악 아닌가? 대중과 분리?= 좀 더 좁힌 서양음악적 ‘클래식’의 개념으로는 ‘바하,헨델 부터 베토벤이 활동하던 마지막 순간까지의 음악, 즉 1827년까지의 고전파 유럽 음악’을 지칭한다.

한국에도 사전적 의미의 클래식, 즉 ‘최고 수준의 고전 명작’은 많다. 음악으로 국한시킨다면, 국악이겠다. ‘최고 수준’이라는 단서를 달면, 궁중 아악, 종묘제례악 등이 있겠지만 이는 대중들이 감상하는 용도가 아니므로, ‘국악’으로 통칭하는 것이 낫겠다.

비(非)유럽 사람들은 클래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마디로 ‘유럽의 음악을 이식 받아 덤으로 즐기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도 사전적 의미의 클래식음악은 있지만, ‘유럽식 클래식도 즐기면서 K-컬쳐 향유의 폭을 넓힌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브르노에서 정해진 날에 열리고 있는 오페라 루살카

항간에 잘못된 분류와 인식도 짚어본다. 클래식을 고급음악으로, 국악은 민속음악으로, 대중음악인 팝은 B급 음악이라는 분류가 있는데, 틀렸고, 이래서는 안된다. 셋 다 대중이 즐긴다는 면에서 모두 같다.

상고사·사국시대·고려·조선에는 명창·악단·창극단의 공연이 클랙식이자, 아이돌 쇼였다. 고급문화는 클래식이고, 대중문화는 팝이라는 구분법은 틀렸을 뿐 만 아니라, 차별적 분류법이므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교과서에 실리면 안되겠다.

▶민속음악과 클래식 경계를 없앤 야나체크= 서양 근대 음악에 눈에 띄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민속음악에서 받은 영감과 맥락을 클래식 음악에 그대로 적용해 흥행에 성공한 체코 출신 야나체크(Leos Janacek, 1854~1928)이다. 그가 작곡에 반영한 모라비아(Moravia) 민속음악은 체코(Zechia) 국악이다. 체코는 크게 동부 모라비아, 서부 보헤미아 두 지역으로 대별된다.

주말 브르노에서 열리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라비아 민속공연

체코 제2도시이자, 남북유럽 및 유라시아의 교차로 이자, 모라비아의 중심도시인 브르노는 유전학자 멘델, 건축가 필그람, 아르누보의 창시자 알폰스무하, 문학가 밀란 쿤데라 외에도, 야나체크라는 ‘특별한’ 음악가가 성장하고 걸작를 빚어낸 곳이다.

야나체크는 작곡가이면서 음악이론가, 민속음악학자, 출판인, 음악교사 등등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

보통 다른 유럽의 음악가들은 어릴적 피아노 레슨 부터 시작해 연주가,작곡가로 이르는 틀에 박힌 그들만의 이력을 갖지만, 야나체크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 안해본 것이 없는, 세상물정과 필부필부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알고 스스로 체험한 음악가라는 점이 특별하다.

▶동서남북의 십자로 브르노, 풍요로운 영감을 주다= 8일 체코관광청에 따르면, 모라비아 동쪽 끝지점 후크발드(Hukvald)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터 브르노에서 성장한 야나체크는 동양적 색채를 띤 서양문화 즉, 모라비아와 슬라브 민속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독창적인 현대 스타일의 클래식을 음악을 창조해냈다.

브르노 시내

긴수염을 가진 동방의 도사가 연상되는 켈트족이 처음 터잡은 곳(켈트어 지명은 브린-Brynn), 동·서양, 남·북 유럽의 십자로인 브르노에서, 야나체크가 다양한 문화를 접한 것과 가난했기에 다채로운 삶의 이력을 가진 점은 그의 음악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야나체크는 ‘모라비아의 국가 오페라’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민속적 색채가 짙은 오페라 ‘예누파(그녀의 의붓딸)’로 모라비아의 음악을 세계에 알려, 드보르자크, 스메타나와 함께 체코 3대 음악가 반열에 올랐다.

브르노의 여러 저명한 문화예술 기관, 야나체크 브르노 필하모니, 야나체크 공연 예술 아카데미, 야나체크 극장 등은 모두 그의 이름을 땄다. 극장 앞에는 야나체크의 실물 크기의 동상이 있고, 그가 살았던 집에는 서재와 피아노 등을 전시한 레오쉬 야나체크 기념관이 있다.

유럽 클래식 메이저 공연장 중 하나인 프라하 루돌피눔

▶야나체크의 국민 오페라, 프라하의 거부에 직면= 야나체크의 부모는 교사였으나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레 브르노(Staré Brno)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가난한 어린이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히려 야나체크에게 행운이었다. 수도원은 야나체크에게 음악에 대한 좋은 기반을 제공했고,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와 독일 라이프치히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음악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으며, 음악 이외의 일반 교육을 함께 이수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한다.

그는 모라비아, 슬라브 민속음악을 배우고 익히는 민속음악가이자, 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으며, 다양한 민속, 클랙식 음악 지식을 집대성하는 출판인 역할도 했다.

모라비아에 닥친 고난, 이를 극복한 민중들의 지혜를 상징하는 총알 닮은 천문시계. 성당의 정오의 종소리는 11시에 울리고, 천문시계에서도 이벤트가 매일 벌어진다.

물론 지휘자로도 일했고, 작품을 직접 작곡하도 한다. 마흔살이 되던 1894년, 드디어 역작 ‘예누파(그녀의 의붓딸)’ 오페라 작곡에 착수한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완성하는데엔 20년이 걸렸다.

야나체크는 왕족이나 귀족 얘기가 없는, 모라비아의 평범한 가족에서 벌어진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문학작품을 기반으로 오페라 ‘그녀의 의붓딸’을 만든다. 문학 텍스트를 기반으로 쓴 최초의 오페라였다. 야나체크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로 성장시킨 계기였다.

요즘 기준으로, 신파조 영화·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써도 괜찮을 것 같은 애절하고 서정적인 선율의 이 오페라는 1904년 브르노 초연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얻는다.

하지만, 서민들의 이야기라서, 풍속과 민초의 문화가 주류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 오페라는 보헤미아의 중심지이자 고국의 수도인 프라하로부터 12년 동안 거부당하다, 우려곡절 끝에 1916년 프라하에서 체코어로 초연된다. 프라하 클래식계의 ‘그녀의 의붓딸’ 공연 거부 사태는, 한국 팝스타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한동안 거부하던 시절과 오버랩된다.

야나체크

▶클래식,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니 대흥행..모범 보인 야나체크= 프라하 공연 직후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1918년에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에서 ‘예누파’라는 이름으로 공연돼 흥행에 성공한다.

이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도 큰 갈채를 받았다. 베네룩스의 앤트워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야나체크는 벨기에 왕 알베르트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야나체크는 휴식이 필요할 때, 온천 마을인 루하초비체에 자주 방문했다. 체코 서부 보헤미안지역에 드보르작이 사랑했던 셰계유산 온천마을 카를로비바리가 있다면, 이 나라 모라비아 동쪽끝 슬로바키아 접경지역에는 루바초비체라는 온천마을이 있다.

야나체크는 건축가 두샨 유르코비치가 지은 최초의 스파 빌라에 머물며 힐링과 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열정을 다하던 야나체크은 음악 작업 도중 갑자기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향년 74세로, 브르노 중앙묘지에 안장됐다.

브르노에서는 매년 국제 오페라 및 음악 축제인 ‘야나체크 브르노’를 연다. 올해에도 전 세계 음악 스타들이 출연하는 가운데 오는 11월 1~24일 브르노 야나체크 극장 등지에서 개최된다. 이를 전후해 드보르작의의 걸작 오페라 ‘루살카’(체코식 인어이야기) 공연 오는 9월7일, 10월28일, 12월6일 이 야나체크 극장에서 열린다.

야나체크 음악의 성공 과정은 클래식이 스스로의 벽을 허물 때 더욱 풍요로워지고, 최종 목적지인 ‘대중의 사랑’을 향해 보다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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