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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의 ‘디즈니 그림 명작’ 둘러싼 황당 소송의 전말[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2019년 계몽사가 복간한 디즈니 그림명작 전집 한정판. 기사에 언급된 B, C, D사가 제작한 디즈니 그림 명작 동화와는 다른 제품이다.[인터넷 캡처]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1980~1990년대 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명작’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2019년 잠시 복간되면서 이제는 어른이 된 1980년대생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추억의 디즈니 명작 동화가 소송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2019년 복간 당시 잠시 계몽사 대표였던 A씨가 계몽사의 디즈니 그림 명작 저작재산권을 훔치고 출판과 NFT(대체불가능토큰) 사업까지 벌이려 했다가, 디즈니로부터 소송을 당해 패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디즈니 그림 명작 “모두 폐기”
2022년 D사가 복간 예정이라고 알린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 [인터넷 캡처]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62민사부(부장 이현석)는 지난달 28일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디즈니코리아)가 B, C, D 3개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상호사용금지 등 청구의 소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피고들이 ‘디즈니’나 ‘Disney’가 들어간 상호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B사와 C사의 이름에는 디즈니가 포함돼있습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디즈니 계열사 중 하나로 인식할 정도입니다. 또 C사와 D사가 제작한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총 60권)의 완성품과 그에 대한 광고선전물 등을 모두 폐기할 것도 명령했습니다.

이날 디즈니와 관련된 소송은 3개가 더 있었습니다. 같은 재판부가 미국 법인 디즈니엔터프라이지즈 Inc가 A사와 C사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등록 말소 청구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C사가 역으로 디즈니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자 확인 청구 소송과 상표 사용금지 등 청구 소송도 있었습니다. 이 2개 소송에서도 역시 디즈니코리아가 승소했습니다.

저작권 공룡 디즈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계몽사 대표 된 A씨 일주일만에 한 일은?
2019년 계몽사가 복간한 디즈니 그림명작 전집 한정판. 기사에 언급된 B, C, D사가 제작한 디즈니 그림 명작 동화와는 다른 제품이다.[인터넷 캡처]

사건은 A씨로부터 시작합니다. A씨는 2019년 1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계몽사의 대표이사로 재직했습니다. 계몽사는 1940년대에 설립된 어린이용 서적 출판사입니다. 1980년 월트디즈니 프로덕션과 정식 계약을 맺고 디즈니 캐릭터가 나오는 동화책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을 출간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IMF 사태 등으로 1998년 부도가 났고, 이후 몇차례 재기를 시도했지만 예전의 명성을 다시 찾지는 못했습니다. 디즈니 그림 명작도 판매가 저조해져 1990년대 말 절판됐습니다.

그러던 계몽사에 2019년 A씨가 대표로 부임합니다. 관련 형사재판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회사를 살려주겠다”며 접근했습니다. 당시 A씨는 또 다른 회사 F사의 대표이기도 했습니다. A씨는 대표가 된지 일주일 만에 ‘계몽사가 가지고 있는 디즈니 그림 명작 저작재산권을 F사에 양도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이사과반수 결의서를 작성했습니다. 가짜였습니다. A씨가 위조한 문서였습니다. A씨는 이로 인해 사문서 위조, 위조사문서 행사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해당 재판은 지난 3월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A씨는 단순히 문서를 위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계몽사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직후인 2020년 4월 F사 대표로서 계몽사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합니다. 디즈니 그림 명작 저작재산권이 자신들에게 있으니 “판매를 중지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당시 계몽사는 2019년 3월부터 9월까지 디즈니 그림 명작 복간 구매 예약을 받았고, 12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해 4억 2000만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2020년부터는 온라인 유통채널을 확보해 상시 판매가 가능해졌는데요, 2020년 3월 매출만 2억 7000여만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과는 F사의 패소였지만 계몽사는 소송이 시작되고 결론이 나오는 약 한달 동안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몽사 또한 A씨와 F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일부 승소했습니다. 현재 해당 재판은 2심이 진행 중입니다.

디즈니 명작 동화 ‘삽화’로 신사업까지…결국 소송전
2022년 B사가 디즈니 명작동화 속 캐릭터를 활용해 NFT를 발행했다고 알리며 배포한 사진. [인터넷 캡처]

A씨는 단순히 계몽사만 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디즈니 그림 명작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디즈니 캐릭터의 저작권도 가지려 했습니다. 2021년 11월 B사가 디즈니 그림 명작에 있는 ‘삽화’에 대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 등록을 했습니다. 중소기업 현황 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A씨는 B사와 C사의 감사이며, D사의 대표입니다. 저작권 등록 직후에는 다시 B사가 D사로 해당 저작재산권을 양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고, 저작권 양도 등록도 마쳤습니다. 이후 B사, C사, D사는 2022년께부터 디즈니 IP 사업을 시도합니다. 디즈니 그림 명작 전집을 출판한다는 소식을 알렸고, 디즈니 IP를 활용한 NFT 사업과 테마파크 조성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디즈니가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죠. 법적인 대응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A씨와 D사는 오히려 디즈니코리아를 상대로 ‘디즈니플러스(Disney +)’ 상표 사용을 멈추라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결국 디즈니 미국 법인과 디즈니코리아도 2023년 2~3월 차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가 최근에 나온 것입니다.

‘회복저작물’ 걸고 넘어진 A씨…법원 판단은 NO

A씨는 디즈니를 상대로 왜 이렇게 무모한 일을 벌인 것일까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회복저작물’ 개념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1970~1980년대 국내에는 해외의 영화, 만화, 소설 등을 무단으로 복제·번역한 창작물들이 만연했습니다. 이른바 ‘해적판’입니다. 당시에는 해외 저작물에 관한 국내 관련법이 없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WTO 등 국제 무역 질서에 편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해외 저작물의 저작권에 대한 국제규범을 따르게 됐습니다. 1995년 저작권법이 개정돼 이전까지 국내에서 무단으로 유통되던 해외 저작물에도 저작권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저작권이 새롭게 생긴 해외저작물을 ‘회복저작물’이라고 합니다.다만 해외저작물로 돈을 벌던 개인이나 회사가 대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몇 가지 단서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회복저작물을 복제한 작품은 1996년 12월 31일까지만 판매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재고 떨이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죠.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 중 1995년 1월 1일 전에 만들어진 것은 계속해서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만 원저작물 권리자가 1999년 12월 31일 이후부터 이용에 대한 대가를 청구할 수 있게 했습니다(1995년 저작권법 개정안 부칙 제4조 제3항). 2차적 저작물이란 기존의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 등 방법을 사용해 작성한 창작물을 말합니다. 2차적 저작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저작물’로 인정받을 만큼의 창작성이 필요합니다.

A씨는 국내에서 유통되던 디즈니 명작 동화는 회복저작물이며, 자신들이 만든 전집의 ‘삽화’ 부분은 회복저작물을 원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디즈니 명작 동화의 2차적 저작물로서 별도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는 A씨의 오독이었던 것 같습니다. 법원은 우선 2차적 저작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62민사부(부장 이현석)는 “원저작물 즉 미국에서 1970~1980년대에 출판된 Disney Art Classic라는 제목의 도서 전집의 삽화에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정도로의 수정·증감을 가한 것이라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어 “오히려 원고는 블로그에 ‘삽화 부분은 원저작물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다’는 취지의 홍보글을 게시했다”고 덧붙였습니다.

2차적 저작물로 간주해도 A씨의 ‘신사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된다 해도 1995년 1월 1일 전에 작성된 것을 계속 이용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으로 새로운 저작물을 창작하는 것을 허용하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전집 삽화 부분이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성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 1995년 개정 저작권법 보호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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