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남부경찰서 인계지구대 경찰관들이 관할 내 대형 유흥가인 ’인계박스’ 순찰중 무면허 운전자를 단속하는 모습. 김민지 수습기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김민지 수습기자] “경찰이 ‘어버버’하는 순간 빠져나가요. 인계박스 안에서 활동하는 단속 대상들이 워낙 눈치가 빠르거든요.” 밤 9시 경기남부 유흥 1번지라 불리는 인계박스로의 출동을 앞두고 35년차 베테랑 경찰관은 손경광등, 차량조회기, 무전기를 단단히 챙겼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평일에도 밤 9시 정도가 되면 손님들이 일대 술집을 가득 채운다. 지구대 경찰들을 긴장케 하는 ‘인계의 밤’이 슬슬 시동을 거는 타이밍이다.

지난 4일 늦은 밤부터 자정 전까지 경기남부경찰서 인계지구대 당직팀과 함께 동행했다. 이곳 관할은 서울 및 경기도 수도권 전체에서 치안 수요 1위를 다투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그중에서도 인계지구대가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곳은 약 700개의 유흥업소가 빽빽하게 들어찬 ‘인계박스’로, 수원시청 뒤 0.36㎢ 면적을 말한다. 구역이 네모나게 생긴 바람에 박스(Box)로 통한다. 축구장 51개 면적에 달하는 유흥1번지 이름에 맞게 인계박스는 술집 존(zone), 모텔 존, 픽업 존으로 각각 구역이 나눠져 있을 정도다.

금요일과 토요일 새벽시간은 순찰차가 진입을 못할 정도로 불야성을 이루고, 길바닥에 주취자가 인사불성으로 누워있다는 신고가 빗발치는 이곳을 단 13명(1개팀 기준, 총 4개팀이 교대근무)의 경찰관이 지키고 있다. 5대의 순찰차 중 평균 4대가 항시 가동될 정도로 바쁜 곳이다.

이날도 순찰차를 타고 구역 내로 진입하니 반짝이는 네온사인, 자욱한 담배 연기, 큰 노랫소리가 갑자기 덮치면서 눈, 코, 귀가 모두 저릿했다.

시민들이 잠에 든 늦은 밤에도 경찰은 움직인다. 특별한 신고가 없어도 이동하는 내내 차량조회기로 무면허, 수배차량 등을 단속한다. 김민지 수습기자.

각 술집 앞에는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서성이며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경찰차에 경계태세를 취하는 눈치였다.

동행한 나효식 인계지구대 경장은 “지금 경찰차를 보자마자 오른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는 사람들, 저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일명 ‘삐끼’들이다. 전부 다 단속 대상”이라며 “미성년자를 술집에 들여 장사하는 업장이 많다”고 언급했다. 지난 3월 1일부터 인계지구대에서 단속한 미성년자 대상 호객행위만 150건에 이른다. 경찰에 잡히면 경범죄처벌법상 범칙금 5만원을 내야 한다.

무면허 운전도 일쑤다. 인계박스를 순찰한 지 10분도 안 돼 보험 미가입 차량과 무면허 운전자를 동시에 검거했다. 픽업 존에 여러대 주차된 소위 말하는 ‘콜뛰기’(유흥업소 접객원을 목적지까지 태워주는 불법 택시) 중에 무면허 운전자가 많다고 한다.

차에서 내린 20대 운전자는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문신으로 뒤덮힌 허벅지와 종아리를 내놓고 있었다.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이 곳에서는 꽤나 보편적인 차림새로 통한다.

나 경장은 “인계박스에서 잡히는 사람들은 수배범일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며 현장에서 즉시 신원을 조회했다. 다행히 범죄 전력은 없었지만 “워낙 조폭들도 많고, 경찰이 쉽게 보이지 않으려면 세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일대는 수원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배들의 주 근거지로 알려져있다.

이어진 순찰은 인계박스 중심 구역인 ‘무비사거리’를 지났다. 갑자기 차단기가 내려진 듯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텔 존이 시작된 것이다.

배장우 경위는 “인계박스 반은 술집과 노래방, 나머지 반은 모텔로 이뤄져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그런데 유흥접객원 고용 자체는 불법이 아니고, (만일 일부가) 성매매를 할 경우 현장을 덮치지 않는 한 단속할 수 없어 맹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일대 오피스텔에서 폭행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는 일이 잦다고 언급했다. 배 경위는 “출동을 다녀보면 혼자 사는 사람보다 커플이 동거해서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주점 뿐만 아니라 오피스텔에서 들어오는 데이트폭력 신고가 일반 폭행 유형을 넘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인계박스 내 주거지에서 빈번하게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출동하는 유형으로 데이트폭력(교제폭력)이 꼽힌다. 인근 주거지 모습. 김민지 수습기자.

인계박스 초입으로 나오면 유흥이 아닌 또 다른 치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가 이곳에 입주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만 2000만원이 소요되는 치안 문제로 떠올랐다. 현재 해당 건물 앞에는 24시간 시민안전센터 초소에 청원경찰 2명이 배치돼 있다. 경찰 지구대와 기동순찰대도 24시간 교대로 들여다보며 안전을 지키고 있다.

한 경찰관은 “박병화 때문에 혼자 귀가하기 무섭다는 여성의 요청으로 안심 귀가 조치를 해준 적이 있다”고 했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인 가운데서도 최근 두드러지는 성과로 인계지구대는 전국 경찰팀 특진대회에 경기도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5개월간의 검거율과 주민 공동체 치안 우수 등 실적을 정량, 정성 평가해 두 개 팀을 선발했는데, 인계지구대 1팀이 여기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강신재 인계지구대 1팀장(경감)은 “우리의 낮은 다른 이들의 새벽이다. 다른 사람들이 평온히 잘 때 가장 바삐 움직이는 곳”이라며 “고충은 있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경찰이 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