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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시의 황제’ 강석우 “진행 철칙은 ‘과유불급’…선 넘으면 안돼” [마티네 콘서트]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8대 해설자
자타공인 ‘클래식 전도사’의 특급 진행
철칙은 ‘과유불급’…점잖지만 편안하게
‘11시 콘서트’ 8대 해설자 배우 강석우.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늘 들으실 곡을 클라라 슈만은 ‘화해의 협주곡’이라고 불렀어요. 요제프 요아힘이 이혼을 할 때 브람스가 그의 아내 편을 들면서 관계가 멀어졌는데, 이 곡을 계기로 화해했거든요. 살다 보면 부부싸움을 하죠. 아침에 오다 다툰 분도 계시고 어제 저녁 다툼의 앙금이 남은 분도 있을 거예요. 이 곡을 들으며 손을 잡고 화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배우 강석우(67)가 젠틀한 말투로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을 이렇게 소개하자 객석엔 옅은 웃음이 번진다. 이어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첼리스트 박유신. 호흡만으로도 서로의 선율을 감지하는 ‘클래식계 비주얼 부부’답게 객석의 몰입도가 높아진다. 한 달에 한 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11시 콘서트’ 현장이다.

강석우는 일명 ‘오전 11시의 황제’다. 입만 열면 관객은 ‘빵빵’ 터진다. 그는 마티네 콘서트의 섭외 1순위 해설자로 명성이 높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음악과 음악가를 소개하는 것에 굉장한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는 마티네 공연의 원조다. 클래식 음악에 친절하고 재밌는 설명을 곁들이며 마티네 공연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의 뒤를 이어 ‘마티네 콘서트’가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공연은 몇 안된다.

지난해부터 ‘11시 콘서트’를 책임지고 있는 강석우는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이해력을 가진 클래식 애호가다. 2015년부터 7년 간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당신에게’(CBS 음악FM)를 진행하며 수많은 클래식 음악을 소개했고, 저서 ‘강석우의 청춘 클래식’을 통해 독자와도 만나왔다. 예술의전당 관계자 역시 공연의 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일등공신으로 그를 꼽는다. 하지만 정작 그는 “나의 역할보다는 대중과 함께 해온 세월에 대한 호응일 것”이라며 몸을 낮춘다.

그의 진행 철칙은 ‘과유불급’. 강석우는 “평상시엔 그렇지 않은데, 음악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는 편”이라며 “음악에 관한 연결고리를 설명해주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어느 선을 넘어가면 관객들이 지루해 해 약간 부족한 듯 핵심을 관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의전당 11시콘서트 8대 해설자 강석우 [예술의전당 제공]

그가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은 불과 20~30분. 120분의 공연 중 1, 2부 각각 15분 내외로 관객과 만난다. 그는 “마음 같아선 음악과 해설의 비중이 1대 1이길 바라지만 지금은 9대 1 정도 되는 것 같다”며 웃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음악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어우러지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그는 “평면적 이야기가 아닌 주변 인물과 서양사를 엮어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매달 두 번째 목요일에 열리는 ‘11시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은 사실 만만치 않다. 준비를 위해 강석우는 다른 사람보다 한 달을 먼저 산다. 매 공연 한 달 전, 프로그램에 올라온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며 원고를 살핀다. 작가가 쓴 원고가 있지만, 강석우는 여기에 새로운 내용을 더하고 다듬는다. 그는 “공연을 위한 원고는 A4 3~4장 정도 나오는데 그걸 반 장으로 직접 줄인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고친 원고가 무대 위에서 그대로 나오진 않는다. 강석우는 “들고 간 원고가 아닌 다른 쪽 이야기를 할 때가 더 많다”며 웃었다. 이중 ‘아재 개그’는 단골 소재. 그는 “클래식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던질 때 관객이 가장 좋아하더라”며 웃는다. 농담을 던지다가도 찰라의 순간 다시 음악 안으로 들어와 핵심으로 향하는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 강석우는 “아재 개그 같은 농담이 혹여 부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한다”며 “재밌는 이야기를 발굴해 적절하게 섞일 수 있도록 골똘히 생각한다”고 했다

‘11시 콘서트’의 명성은 강석우의 매끄러운 진행 뿐 아니라 여타 마티네 공연과는 다른 차별점이 있어서 가능했다. 강석우는 ‘프로그램의 차별화’를 ‘11시 콘서트’의 강점으로 꼽는다. 그는 “보통 마티네 콘서트는 ‘쉬워야 한다’는 명제가 있어 ‘관객에게 맞추는 음악’을 하기 마련”이라며 “반면 ‘11시 콘서트’는 관객을 끌고 가는 음악을 하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구성, 음악에 대한 관객의 결핍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낯설고 생소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달도 있다. 강석우는 “그럴 때는 관객에게 ‘이 곡은 어렵다. 그냥 참고 들어라’며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며 웃었다. 여기에 ‘악기들이 주고 받는 앙상블에 집중해보라’는 ‘꿀팁’을 더해준다. 해설자의 너스레에 ‘막판’ 관전 포인트가 더해지면 관객도 긴장과 부담은 내려놓고 음악으로 몰입하게 된다.

'11시 콘서트' 8대 해설자 배우 강석우가 30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클래식 해설자’ 강석우의 가장 큰 장점은 편안함이다. TV에서 만나던 익숙한 얼굴이 무대로 걸어나오면 객석의 분위기는 금세 말랑해진다. 점잖지만 젠체하지 않고, 농담을 던지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준다. 물론 이 경우도 ‘과유불급’이다. 강석우는 “엄숙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필요한 경우,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말을 걸어 연주를 청하기도 한다”며 “다만 정중하되 경박하지 않아야 모두가 불편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음악은 행복하기 위해 듣는 거라 무게 잡고 교과서를 읽듯 설명하면 의미가 없어요. 관객들이 음악을 긍정하고 받아주는 눈빛을 보이지 않으면 연주자도 긴장하거든요. 제 임무는 관객을 풀어줘 행복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예요.”

다소 진입장벽이 높은 관객도 있다. 팔짱을 끼고 무대를 노려보는 ‘중장년 남성 관객’이다. 강석우는 “워낙 여성 관객이 많은 공연이다 보니 어색해서 그렇다”며 “남성 관객들이 어렵게 찾아온 공연에서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무척 뿌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여전히 한정적”이라는 점은 그에게도 아쉬운 점이다. 그는 “사실 방송사에서 클래식 프로그램이 생겨야 음악의 저변이 확장될 수 있다”며 특히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프로그램과 해설 음악회 등을 통해 ‘미래 관객’ 확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요즘 아이들은 감성이 메마른 채 성장해요. 입시 지옥을 겪고 나면 대학생이 돼서도 70%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어요. 따뜻한 감성과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음악인데 말이죠. 깨진 유리창으로 보면 무서운 세상이지만, 음악을 통해 보면 세상은 아름다워요. 음악이 서로를 배려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 확신합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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