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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딸 효정이 죽였는데, 징역 살아도 20대?”…거제 피해자 가족 ‘교제폭력처벌법 마련’ 청원
데이트 폭력 피해자 이효정씨(왼쪽)와 가해자. [JTBC뉴스 갈무리]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경남 거제에서 헤어진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 사건과 관련, ‘거제 교제폭력 사건’ 피해자 고(故) 이효정 씨의 유가족이 교제폭력처벌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유가족은 "교제폭력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교제폭력처벌법을 마련하라"며 "제2, 제3의 효정이가 더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효정이 엄마’라는 밝힌 청원인은 “행복한 일상이 4월1일 아침 9시 스토킹 폭행을 당했다는 딸 아이의 전화 한통으로 무너졌다”며 “20대의 건장한 가해자는 술을 먹고 딸 아이의 방으로 뛰어와 동의도 없이 문을 열고 무방비 상태로 자고 있던 딸 아이 위에 올라타 잔혹하게 폭행을 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응급실을 간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 집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는가 하면, 10일 딸 사망 후 11일 긴급체포에서 풀려나 13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다니며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 가서 더 좋은 여자친구를 만나겠다’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청원인은 특히 “사흘간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에도 조문도, 용서를 구하는 통화도 없었다”고 했다.

‘거제 전 여자친구 폭행 남성’이라며 온라인에 퍼지고 있는 사진.

그는 이어 "이제 21살밖에 안된 앳된 딸이 폭행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 및 패혈증으로 4월 10일에 거제 백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현실에 부모와 가족들은 극심한 슬픔과 충격에 빠져 있다"며 "딸을 잃고 나서야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앞으로 어떻게 남은 자녀들을 키워나갈 것인지 몹시도 불안하고 겁이 난다. 사춘기 막내는 누나의 방을 보면 누나 생각이 나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가해자가 저희 집 주소도 알고 있고 가족들의 심신도 피폐해져 결국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청원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효정이는 가해자에게 폭행 당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상해치사, 주거침입, 스토킹으로만 기소됐다"며 "사람을 죽여 놓고도 형량이 3년 이상의 징역밖에 안돼 형을 살고 나와도 가해자는 20대다. 치사는 실수로 죽인 것이지만 가해자는 명백히 효정이를 죽이기 위해 목을 조르고 반항할 수 없도록 결박한 채로 폭행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를 11번이나 멀쩡히 풀어준 거제 경찰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교제폭력에 대한 수사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청원인은 교제폭력 신고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효정이는 가해자를 11번이나 신고했지만 경찰에서 번번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해 풀어줬고, (가해자) 김 씨는 더 의기양양해져서 제 딸에게 ‘이제는 주먹으로 맞는다’, ‘너 죽어도 내 잘못 아니래’라고 했다"며 "심지어 경찰은 가해자가 구속될 때 ‘가해자 인생도 생각해달라’라고 훈계하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정작 효정이가 살려달라고 11번이나 신고했을 때에 경찰은 가해자에게 ‘효정 씨 인생도 생각해달라’라는 말 한마디, 권고 조치 한번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김 씨의 범죄를 스토킹 범죄로 처리해서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수사기관에서 교제폭력을 단순 쌍방폭행으로 종결시키지 못하도록, 신고 단계에서 신변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수사 매뉴얼을 전면적으로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경남 거제에서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 김씨로 추정돼 온라인상에 퍼진 사진(왼쪽)과 폭행을 당해 입원 치료 중 숨진 피해자 이씨. [온라인 커뮤니티·JTBC 방송화면 캡처]

아울러 교제폭행죄에 대해 더 높은 형량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해자 김 씨는 폭행·상해치사죄로 기소됐고, 폭행·상해치사죄는 살인의 고의가 없는 범죄인만큼 살인죄보다 죄질과 형량이 훨씬 더 가볍다"며 "교제폭력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 사건은 가해자가 오랜 기간 악질적으로, 상습적으로 피해자를 때리다가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 사건은 폭행·상해치사죄로 취급되어 감형받는 면죄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원인은 "잘못된 사법 관행을 철폐하고, 김 씨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가족·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행·상해치사 범죄의 경우 살인죄와 비슷한 형량으로 가중할 것을 요구한다"며 "비슷한 취지에서 스토킹 범죄에서 가해자가 면식범인 경우 양형을 가중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제폭력은 형법상 협박, 폭행죄로 취급되어 반의사불벌조항이 적용돼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상을 잘 알고 있어서 손쉽게 보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처벌을 정말 원하느냐고 묻는 건 가해자에게는 피해자만 잘 위협하고 을러대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청원인은 특히 "국회에서 지금 당장 교제폭력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교제폭력처벌법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제2, 제3의 효정이가 더는 있어선 안된다. 우리 가족과 같은 고통을 받으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한편, 이 청원은 17일 오전 11시 기준 2만9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 공개 이후 30일 이내 청원 성립 요건인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 소관위원회에 넘겨져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게 된다.

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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