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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하층민 출신’ ‘알고보면 돌싱남’…인도 3연임 총리 모디 [헬로인디아]
차(茶) 상인 집 아들...인도 최하층 신분.
18세에 결혼...힌두민족주의 가입으로 독신 유지
구자라트 주총리 시절 경제 혁신, 총리 당선 기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4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인도국민당(BJP) 당사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1950년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작은 마을의 차(茶)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 이후 처음으로 3연임을 달성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4년 집권 이후 인도 경제를 눈에 띄게 성장시킨 모디 총리에 대한 지지가 이번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 신분제 카스트에서 가장 낮은 수드라(수공업인)에 가까운 집안 출신으로, 어린 시절 기차역 노점에서 ‘차이(인도식 밀크티)’를 팔았다. 자신을 ‘하층민의 대변자’라고 말하며 낮은 신분을 오히려 서민 정치 표방에 활용했다.

역대 총리들이 영국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유학파인 것과 달리 모디 총리는 뉴델리에 있는 델리대학을 나온 국내파로 힌디어와 구자라트어를 주로 사용한다.

모디의 개인사는 유독 베일에 싸여 있다. 독신이고 자녀가 없으며 단순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선호한다는 정도다. 모리 총리는 한차례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18세에 쟈소다벤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나 조촐한 식만 올렸고 같이 살진 않았다고 한다.

독실한 힌두교도였던 모디는 결혼 직후 히말라야로 구도한다며 떠났다가 구자라트로 돌아와 힌두민족주의 단체 민족봉사단(RSS)에 ‘자원자(프라차락)’로 가입했다. RSS는 현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의 모체이다.

프라차락은 가입 조건에 결혼이나 가족생활을 피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혼 사실을 숨긴 것으로 알려진다.

인도의 집권 인도인민당(BJP)의 당수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달 24일 선거 운동 집회에 나서고 있다. [AFP]

모디 총리는 1971년 힌두 국수주의 단체인 민족봉사단(RSS)에 입단하는 등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힌두교에 깊이 발을 들였다. RSS는 인도 BJP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으로 지금도 인도 정계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19년 인터뷰에서 모디 총리는 “RSS에 헌신했고, 재혼하지 않았으며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버리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2002년 구자라트 주총리 시절 현지에서 발생한 ‘무슬림 대학살 사건’과 관련한 책임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힌두교도의 무차별 공격으로 무슬림 1000~2000명이 숨졌는데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등 구자라트 주정부가 편파적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인도 최고 법원이 모디의 행동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려 하자, 그는 주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결하고 도로를 건설하며 전력 공급을 개선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2003년에는 ‘바이브란트 구자라트(Vibrant Gujarat·구자라트 경제 활성화) 투자설명회’ 행사를 주최해 당시 인도의 최대 재벌 중 하나였던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이 수십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자라트주는 인프라와 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킨 결과 연평균 9%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인도에서 이른바 ‘구자라트 모델’로 불리며 이는 ‘개발 및 정부 효율성’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이후 모디 총리는 1987년 RSS를 기반으로 한 BJP에 입당했다. 힌두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비주류 정당이 탄력을 받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가 주지사 시절 보여준 ‘구자라트 모델’은 인도의 청사진이 됐고 2014년 BJP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모디는 총리에 취임한다.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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