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등 과일값 고공행진 계속
과일류 할당관세 하반기 연장
정부 “물가안정 동참” 재차 당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소비자물가가 두 달 연속 2%대 오르면서 안정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물가상승세가 사실상 정점을 지났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체감물가는 물가 당국의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배 가격이 역대 최고치로 상승하는 등 과일 값이 고공행진하는 데다 중동 사태로 유가까지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물가안정 노력에 동참해달라”는 정부의 계속된 요청을 업계와 공공기관이 언제까지, 어느 정도로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09(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1%를 찍은 뒤 지난 4월(2.9%) 다시 2%대로 내려갔다. 정부의 전망대로 물가가 하반기로 갈수록 2% 초중반대로 안정화하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3월 물가 정점론’에도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다만, 품목별로 들쑥날쑥한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밥상 물가에 영향을 주는 농산물 물가는 지난달 19.0% 올라 전체 물가 상승세를 견인했다.
이미 가격이 높은 수준으로 오른 배(126.3%)가 1975년 1월 통계 작성 이래 최대폭 상승했고, 사과(80.4%) 역시 석 달째 80%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토마토(37.8%), 고구마(18.7%), 배추(15.6%), 쌀(6.7%) 등도 오름세를 이어갔다.
신선식품 지수는 작년 동월 대비 17.3% 올랐다. 신선채소가 7.5% 올라 한 자릿수 대 상승률을 기록했음에도 신선과실이 39.5% 치솟은 영향이 컸다. 건강기능식품(8.7%) 등 가공식품 물가는 2.0% 상승했다. 반면 축산물의 물가 지수는 2.6% 하락해 지난 1월 이후 4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도축 마릿수와 수입 증가에 따라 닭고기(-7.8%), 돼지고기(-5.2%), 국산쇠고기(-2.4%) 등이 내림세를 보였다.
석유류 물가는 국제 유가 상승으로 3.1% 올라 전월(1.3%)보다 오름세가 확대됐다. 지난해 1월 4.1%를 기록한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3.1% 올랐다.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에 따른 물가 변동분을 제외하고 장기적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2.2%를 나타냈다.
정부는 이날 물가지수가 2%대로 둔화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상승폭이 축소한 것인 만큼 체감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달 종료 예정인 바나나·파인애플 등 과일류 28종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을 하반기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최근 가격이 오른 무와 양배추에 대해서는 각각 신규 할당관세 적용, 할당관세 연장으로 공급을 확대한다.
일반 기업과 공공기관을 향해서는 물가 안정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에도 연초 적용했던 원당·계란가공품 등에 대한 할당관세를 하반기에도 유지하고, 최근 가격이 급등한 오렌지·커피농축액 등을 추가해 총 19종의 식품원료에 대한 원가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며 “업계에서도 원가절감 노력 등을 통해 인상요인을 최대한 흡수하고 물가 안정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공공기관에는 요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최 부총리는 “공공요금은 서민·소상공인 등 민생과 직결된 만큼 강도 높은 자구노력 등을 통해 요금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불가피한 경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인상 폭을 최소화하는 게 국민에 대한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며 “정부도 발전연료로 사용되는 LNG에 대한 관세를 하반기까지 면제하는 등 공공기관의 원가절감 노력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이 정부의 요청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정부 역시 하반기 물가 불안요인으로 일부 식품가격 인상 움직임에 더해 이상 기후와 국제유가 변동성 등을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버틸 만큼 버텼다”면서 김, 간장, 식용유, 면도기, 건전지 등 제품 가격을 올리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양영경 기자
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