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기 포항 시추에 힘 실어
산유국 가능성 다시금… 올해 말 시추 시작
이번엔 다를 것이란 전망 속 신중론
1976년 1월 15일 "영일만 부근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고 발표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 [연합] |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는 일찍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산유국 기대감을 심어줬던 지역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76년 1월 이 일대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원유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시추가 중단됐고 이후 전남 해남 우항리 지역에 석유 발굴 시도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다시금 포항영일만 일대에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포항 석유 매장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포항 석유 가능성은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집필한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경주에서 사흘 동안 불길이 솟았다’고 기록됐다. 이 문구는 박 대통령 시기 시추에 힘을 실었다고 한다. 더불어 큰 백악기 말엽 퇴적암층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부존 여부와 부존량은 향후 시추 과정을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경제성 평가 확정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만약 성공할 경우 동해 심해에서 2035년에 석유·가스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일 경북 포항 영일만 바다가 잔잔한 물결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이날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
본격적인 시추 작업 전인 만큼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석유·가스 생산을) 이룬 것도 아니고 아직 시작이며, 상업적 성공을 이뤄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포항 지역의 석유 부존 가능성은 1960년대부터 제기돼 왔다. 박 전 대통령은 1976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 석유 발견'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지만, 곧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심해 탐사에 대한 기술과 자료 축적이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고, 1970년대보다 심해 탐사·분석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지난 1966년 포항 앞바다를 시작으로 국내 해저자원에 대한 석유·가스 탐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한국석유공사가 공개한 '국내 대륙붕 탐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륙붕 석유 탐사는 1970년대 외국 석유회사들이 조광권(광물을 채굴·취득할 수 있는 권리)을 설정해 한정된 지역에 대해 간헐적으로 이뤄졌다.
1979년 석유공사 설립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대륙붕 탐사가 이뤄졌는데, 2022년 9월 말 기준 국내 대륙붕 석유탐사를 위해 총 11만6549L-㎞의 2D(이차원) 및 1만589㎢의 3D(삼차원) 물리탐사와 48공의 탐사 시추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1998년 울산 앞바다에서 가스전을 발견하고 시추 등 과정을 거쳐 '동해 가스전'을 개발하기도 했다. 다만 동해 가스전은 2004∼2021년 약 4500만배럴의 가스를 생산하고 가스 고갈로 문을 닫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기존 동해 가스전 주변을 포함해 특히 심해 지역에서 석유·가스 부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2월에는 동해 심해 탐사에 해당하는 8광구와 6-1광구 주변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축적됐다는 판단하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평가 전문기업인 미국 '액트지오'(Act-Geo)사에 심층분석을 의뢰했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액트지오 대표는 미국 해저학회 회장으로, 과거 엑손모빌(미국 종합 에너지사)에 있을 때 현시대 가장 큰 광구인 가이아나 광구 개발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라며 "심해 탐사의 권위자이고 실력과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신뢰를 표했다.
액트지오는 포항 일원 동해 심해 유망구조에서 최소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부존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평가 결과를 지난해 말 정부 측에 통보했다.
정부는 이후에도 약 5개월에 걸쳐 해외와 국내 전문가, 별도 자문단 등을 통해 액트지오 측의 평가에 대한 신뢰성 검증을 받았다.
정부 관계자는 "석유 개발 과정의 첫 단계인 광권 확정에 이은 지진파 탐사를 했다"며 "그 결과 자료 분석에 1년이 걸렸고 이를 바탕으로 구멍을 뚫고 시추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 12월에 (액트지오로부터) 결과를 받았지만 저희가 자체 평가도 하고 국내 자문단 검증도 하고 미국 최고 권위자를 다시 모셔 3중, 4중으로 계속 검증했다"며 "오늘 (발표)까지 오는 과정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고 강조했다.
하나증권은 이날 아직 탐사 초기단계로 확신을 갖기에는 다소 이른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유재선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향후 추가적으로 기대감을 높일 수 있겠으나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유 연구원은 "탐사 시추 계획은 통상 성공 확률이 10% 내외 수준으로 간주되나 기술 개발 등을 감안해 정부는 20%로 제시했다"며 "천해가 아닌 심해이기 때문에 시추 비용 집행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생산까지 이어진다고 가정하는 경우 단가는 투자비와 직결되기 때문에 시추 횟수 및 비용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dingd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