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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중, 주먹 불끈 쥐고 ‘승리하리라’…1만 관객 홀린듯 기립박수
구속심사 앞두고 ‘승리하리라’ 열창
입장 표명 없이 ‘슈퍼클래식’ 마무리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21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빈체로, 빈체로(승리하리라, 승리하리라!)”

세계에서 가장 히트한 오페라 아리아인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의 마지막 가사를 부르며 김호중(33)은 눈을 부릅뜨고 주먹 쥔 손을 높이 치켜 들었다.

“밤이 지나 별들이 지고 새벽이 찾아오면 나는 승리하리라! 승리하리라!”라는 한 소절이 모두 지나자 1만여 관객은 홀린듯 일어나 엄청난 함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기이한 광경의 연속이었다. 팬들은 눈물을 흘렸고, 그러다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다짐하는 김호중에게 우레와 같은 응원의 함성을 보냈다. 이 곡은 김호중의 학창시절 스토리를 담은 영화 ‘파파로티’에도 담겨 팬덤 아리스에겐 익숙한 곡이다. 하지만 ‘음주 뺑소니’에 운전자 바꿔치기 등 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 부를 만한 곡은 아니었다.

‘음주 뺑소니’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수 김호중(33)이 무대에 섰다.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 클래식: 김호중&프리마돈나’(5월 23일, 이하 ‘슈퍼 클래식’)을 통해서다.

이날 김호중은 공연 시작 1시간 28분이 지나 등장했다. 2부 에서 오케스트라 뒷편 무대에서 등장한 김호중이 첫 곡으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자, 객석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객석에선 “아휴, 너무 속상하다”, “마음이 아프다”며 김호중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한숨이 나왔고, 관객들은 가슴에 두 손을 모은채 경청하면서도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기 바빴다.

이 공연은 오스트리아의 빈필, 독일의 베를린필, 미국의 뉴욕필,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RCO) 등 세계 4대 오케스트라의 현역 단원 42명이 내한, ‘월드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 클래식’의 일환으로 열렸다. 김호중을 앞세운 이틀간의 공연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2만 석이 줄줄이 팔려나갔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음주 뺑소니’라는 폭탄을 끌어안는 상황이 됐다.

23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케이스포돔에서 열리는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 클래식: 김호중&프리마돈나’ 공연 [사진=고승희 기자]

갖은 논란을 몰고 다닌 상황이나 김호중과 주관사 두미르 측은 공연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김호중은 “‘슈퍼 클래식’을 마친 뒤 자숙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24일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며 이날 공연은 무산됐다. 결국 첫날 공연이 김호중의 구속 신사 전 마지막 무대가 된 셈이다.

무대 위 김호중은 단 한 차례도 웃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객석 곳곳을 응시하며 팬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때마다 팬들은 케이스포 돔이 떠나갈 듯한 함성을 질렀다. 위기에 처한 김호중을 응원하는 듯한 함성이 터질 때는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도 놀란 눈치였다.

‘별은 빛나건만’으로 시작해 김호중은 로타의 ‘땅은 불타오르고’, 주케로의 ‘평온한 저녁 바다’, ‘후니쿨리 후니쿨라’, ‘네순 도르마’ 등 총 6곡을 불렀다. ‘평온한 저녁 바다’의 첫 소절이 등장하자 팬덤 아리스는 익숙하다는 듯이 함성을 질렀고, 김호중은 팬들의 지지에 두 팔을 벌려 세상을 품어내듯 자신감 있게 무대를 끌고 갔다.

네 번째 곡인 ‘후니쿨리 후니쿨라’에선 경쾌한 리듬에 맞춰 관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고, 김호중은 노래를 마친 뒤 인이어를 빼고 팬들의 함성을 충분히 귀에 담았다. ‘시야 방해석’에 해당하는 무대의 양쪽 끝으로 몸을 돌려 관객과 눈을 마주하며 가슴에 손을 얹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 때마다 팬들은 떠나갈 듯한 박수를 보냈다.

이날 공연장에서 만난 한 팬은 “아마 호중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응원하고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라며 “우리 덕분에 호중님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과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대중음악계의 한 관계자는 “스타가 불미스러운 일에 엮이면 팬들이 먼저 다그치고 단체 대응을 하는 세상에 김호중의 팬덤은 기이하기까지 하다”며 “팬들의 광신도 같은 맹목적 열정이 스타의 뻔뻔한 행보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당초 프로그램북에는 김호중과 소프라노 아이다 가리풀리나와의 듀엣곡도 3곡이나 예정돼있었으나 단 한 곡도 소화하지 않았다. 공연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만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여러 혐의로 조사를 받는 사람과의 듀엣 무대를 권하는 것이 추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한 무대에 서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고 귀띔했다.

'음주 뺑소니'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가수 김호중의 공연이 열리는 23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 앞에 김 씨의 팬 등 관람객들이 예매표 수령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

김호중 측은 이 공연을 끝으로 자숙에 돌입하겠다고 한 만큼 이날 무대에선 그가 팬들에게 내놓을 메시지에도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인사말도 남기지 않은 채 공연을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난 뒤 팬들은 ‘김호중’을 연호하며 공연장을 쉽사리 떠나지 못했지만, 김호중은 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날 공연장은 일찌감치 김호중을 만나려는 팬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케이스포돔 입구엔 김호중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각종 상품을 파는 상인들이 등장했고, 김호중의 사진이 8장이 담긴 2만원 짜리 프로그램도 속속 팔려나갔다.

첫날 공연 시작 직전 둘째 날에 김호중이 출연할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70대 남성팬은 “호중이가 팬들을 위해서 공연을 하기로 결정한 건데, 예정된 공연은 하게 해줘야 하는게 아니겠냐”고 말했고, 50대 후반의 여성 팬은 “내일 호중님은 공연을 안 나오지만 다른 팬들과 함께 티켓은 취소하지 않기로 했고, 주관사에 문제 제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호중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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