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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세 인생길 비결은 ‘늘 감사합니다’하는 마음” [도약하는 대구·경북]
1924년생 배수용 씨를 만나다
한국전 장사상륙작전 구사일생
뒤돌아 보니 전쟁때 가장 고통
‘나만 생각하는 사회’ 되는게 걱정
나라가 망하면 개인은 없는 것
지난 3월초부터 5월초까지 수 회에 걸쳐 헤럴드경제와 만나 100년의 삶을 풀어놓는 배수용 할아버지. 사진=김병진 기자

“뒤돌아 보니 어떻게 100년이 흘러갔나 싶을 정도로 훌쩍 흘러갔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 긍정적인 사고, 쉼 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함, 다복한 가정사 등이 한 세기를 살아 나올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마 나다움을 찾기 위해 배수용 옹과의 두어달의 만남 여정은 본지 기자에게도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소탈한 웃음이 건강한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한달 전쯤 한번 만났을 뿐인데도 단박에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틈만나면 자전거를 타고 자주 나들이를 한다는 배 할아버지는 몸소 1층 현관까지 나와 혼자 사는 7층 집으로 이끌었다.

짧은 인터뷰로 감히 그의 총체적인 삶을 알 수는 없었지만 서산으로 넘아가는 붉은 노을 만큼 화려한 비상을 계속하고 있는 배수용 씨와의 정해지지 않는 자유스런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 나라 사랑하는 법, 지금의 현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 등을 얻어본다.

-건강은 어떤가.

▶건강과 행복의 비결로 규칙적인 생활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꼽았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이 주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주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난 3월 중순 목욕탕에 가서 계단을 넘다가 넘어져서 병원 신세를 지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잘 견디어 왔다.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내 발이나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타고 노인복지관도 가고 한다. 아직도 움직이는 데는 자신있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매일 새벽 4시 40분께 일어나서 매일 동네 큰 목욕탕에서 가서 풀장안에서 30분 정도 걷고 몸에 물을 맞는 등 1시간 가량 운동을 한다. 그렇게 하면 하루를 시작하는 데 몸이 가볍다. 7시 30분께 집에 와서 아침식사 후 9시 30분에 자전거를 타고 노인복지관에 나간다. 10시부터 수업에 참여 후 정오께 복지관이나 보훈회관에서 식사한다. 오후에는 밖에서 소일 하고 나면 하루 일과가 된다. 바쁘게 산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놀 시간이 별로 없다.

-가족 및 생계는 어떻게 꾸리나.

▶첫째 딸과 집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주위에 딸들이 있어 반찬을 해다 주는 등 나를 매일 돌본다. 슬하에 2남3녀를 뒀다. 아들들은 미국과 서울에 산다. 삶에 외롭거나 그렇지는 않다. 나라에서 상이보상금조로 나오는 것과 아이들이 도와 주는 것으로 살아간다. 생활은 괜찮다.

-일제 강점기, 8·15광복,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를 함께 했는데.

▶살아 오면서 큰 고초를 겪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역사의 격동을 겪으면서 나는 물론 전국민들이 고난을 치렀다. 일제 광복때는 영덕 부근 두메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그 당시는 몰랐다. 일주일 정도 지난 뒤 인근 5일 장터를 갔다가 상세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어 알았다. 한국전쟁 발발때는 목숨 아까운 줄 몰랐다.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듯 지금도 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받는 등 어려움에 처할 경우 단 한번의 망설임 없이 한 목숨을 바칠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장사상륙작전을 이야기 한다면.

▶해마다 6월이 오면 더더욱 ‘문산호’가 생각난다. 특히 1950년 9월 14일 새벽 5시께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상륙 당시가 생생하다. 전날 부산항을 떠나 올때는 고요했던 바다가 상륙 당시에는 태풍 ‘케지아’ 북상으로 배가 좌초됐다. 파도가 배 위로 오를 정도로 심난했다. 파도가 육지로 밀어닥치는 순간을 포착해 내려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전우들 중 파도에 휩쓸려 배 밑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도 봤다.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그 당시를 그린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2019년 개봉)처럼 총탄이 날아다녔다. 총탄을 맞는 등 여러 곡절이 발생했으나 구설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

문산호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모습 [영덕군 제공]

-상륙 당시 무슨 작전에 투입되는지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한 양동작전, 즉 기만전술인지도 몰랐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땐 무조건 전장에 나가야 한다는 마음에 망설임 없이 배에 탑승했다. 현재 그 당시 참전했던 사람 중 이동기(대구), 송원갑(영주) 등 극소수가 살아 있다. 당시 동해안에 게릴라 전을 간다는 것을 알고 갔다. 장사에 상륙하고 보니까 나의 원 고향이 영덕이니까 짐작이 됐다. 200고지 점령지까지 가면서 많은 전우들이 죽어 나갔다. 이후 조치원호가 와서 철수할때까지 고립무원의 적 후방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하다 부산으로 귀환하기 까지 생사를 수 회 넘나들었다.

-이후 장사상륙전승기념공원 조성을 위해 전력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식들에게 내가 죽으면 국립묘지도 필요없다. 자식들에게 장사 해안에 내 육신을 뿌려달라고 했다. 그 정도로 애착이 있다. 내가 장사상륙전승기념공원 조성을 위해 모든것을 쏟아 부었다.

-100세를 살아보니.

▶뒤돌아 보니 전쟁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 것을 빼고는 다행히도 큰 우환없이 살아 나온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100세를 살아온 것을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길을 걸을 때 등 시간날 때마다 염불하듯 ‘늘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 혹은 중장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 자신을 위함보다도 내 몸을 한없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는 앞도 뒤도 없이 내 가족 굶어 죽이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하루도 놀지 않았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움직여 나왔다. 청년 혹은 중장년들은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움직여라.

-장수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참 긴 세월이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족과 이웃들이 있어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다고 본다. 여기에다 쉼없이 움직인 것과 적게 음식을 먹는 것, 앞으로도 얼마간은 자전거를 타고 거뜬하게 마실을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와서 100세의 삶을 되돌아보니 지나온 날이 엊그제 같다.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 덕분에 행복하게 살수 있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국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동전의 양면처럼 오래 산다는 것은 고통과 축복이다. 국가에서 100세가 넘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당장에 몸이 아파 움직을 수 없을 정도가 돼야 정부 의료공단에서 사람을 보호해주는 시스템이 있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은 보호 대상이 못된다. 정부 정책 수립자들은 나이 먹는 사람들의 고통을 모른다. 재산 없고 생활보호를 못받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엄청스럽게 잘해 준다.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건강한 사람은 해택을 받지 못한다. 기준을 낮추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자신과 사회에 바라는 것은. 후세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말은.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 국가는 내가 보람된 일을 한 것을 남겨 줬으면 좋겠다. 후세들이 국가관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가관 없이 내몸 하나만 생각하는 사회가 돼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나라가 위태로울때는 우리 시대처럼 지원해 가지는 못할 망정 동원령이 내려지면 나도 참전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등 국가를 위한 기본 자세를 갖기를 바란다. 나라가 망하면 개인은 없는 것이다.

경산=김병진 기자

kbj765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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