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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인에게 은신처·대포폰 요청한 마약사범…대법 “범인도피교사 처벌 불가”
수사망 좁혀오자, 지인에게 동무 요청
마약 밀반입·범인도피교사 혐의 적용
1·2심 모두 유죄…징역 8년 실형 선고
대법, “범인도피교사 유죄 판단은 잘못”
대법원[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수사를 받던 마약사범이 지인에게 은신처와 대포폰 제공을 요청해 6개월간 도피 생활을 했더라도,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교사(敎唆)란 타인에게 범행을 지시해 죄를 범하게 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대법원은 도움 요청을 단순 방어권 행사라고 봤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엄상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항정, 범인도피교사 등 혐의를 받은 A씨에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앞서 2심은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범인도피교사 혐의까지 유죄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며 판결을 깨고,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A씨는 2021년 7월께 태국에 있는 일당과 공모해 시가 5000여만원 상당의 필로폰 약 500g을 국내로 밀반입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마약을 비닐에 감싸 도마 내부에 숨기고, 주방용품과 함께 포장했다. 또 비슷한 시기 같은 수법으로 시가 1억원 상당의 필로폰 약 1kg을 밀반입한 혐의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A씨는 수사기관이 자신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자, 지인인 B씨에게 은신처와 대포폰 제공을 부탁했다. “법적으로 어지러운 일이 생겼다”는 A씨의 부탁에 B씨는 그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는 등 도움을 줬다. 그의 행방을 찾는 수사관들에게도 B씨는 “A씨의 번호도 모른다”며 거짓말했다.

A씨는 6개월간 도피 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붙잡혔고,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마약 밀반입 혐의 뿐 아니라 범인도피교사 혐의도 받았다. B씨에게 자신을 도피하도록 교사한 혐의가 추가 적용됐다.

1심과 2심은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8년 실형을 선고했다.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13형사부(부장 박주영)는 지난해 8월, “필로폰을 수입했을 뿐 아니라 도피를 교사해 죄책이 무겁다”며 징역 8년을 택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6-1형사부(부장 원종찬)도 지난 2월, “1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단 중 범인도피교사죄를 유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 대법원은 “지인 B씨는 A씨와 10년 이상의 친분관계 때문에 부탁을 도와준 것으로 보인다”며 “도피를 위한 인적·물적 시설을 미리 갖췄던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B씨가 자신의 주거지에서 A씨와 함께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한 것은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방어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원심(2심)엔 이처럼 범인도피교사죄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로써 A씨는 4번째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판단 취지에 따라 범인도피교사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보이는 이상 형량도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이 사건에서 A씨를 대리해 대법원 판단을 이끌어 낸 서지원 변호사(법무법인 나란)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1·2심은 법리를 오해해 휴대전화와 잠자리만 제공받았음에도 유죄로 판단했다”며 “대법원의 판단은 기존 범인도피교사죄의 법리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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